제레미 리프킨/민음사/2001년 5월 25일/448쪽/15,000원
책소개
사회 비평가이자『노동의 종말』『바이오테크 시대』와 같은 베스트셀러의 저자 제러미 리프킨의 최신작. 이 책은 저자가 미래의 기술과 환경 그리고 세계 경제의 흐름을 읽고 비전을 제시하는 시리즈의 세 번째에 해당하는 저서로, 인류의 미래상을 제시한 책. 리프킨은 인간의 모든 경험을 상품화하는 새로운 자본주의가 실은 자본주의의 토대를 허물고 있다고 주장하며, 지리적 공간에 뿌리를 둔 문화적 다양성을 지켜나가는 것만이 인간의 문명을 유지할 수 있는 길이라 말하며 인간 사회가 나아가는 방향의 전체상을 제시했다.
제레미 리프킨은 그동안 주목할 만한 책을 여러 권 발표하였다. 그 중에서도 그의 이름을 전세계에 알린 것은 <엔트로피>다. 기계적 세계관에 바탕을 둔 현대문명을 비판하고 에너지의 낭비가 가져올 재앙을 경고한것이 바로 '엔트로피' 개념이었다. 그 후 그는 <노동의 종말>을 통해 정보화 사회가 창조한 세상에서 오히려 수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고 미아가 될 것이라 경고하는가 하면, <소유의 종말> 통해서는 소유가 아닌 '접속'으로 상징되는 새로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기도 하였다. 그의 이론이 지나치게 비관적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긴 하지만 미래에 대한 전망과 현실 비판은 여전히 호소력을 가지고 있다.
한편 리프킨의 문명비판에는 환경철학자로서의 면모가 두드러진다. 문명에 대한 접근 방식 자체가 환경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엔트로피라는 개념도 그렇다. 육식에 대한 비판이나 생명 현상에 대한 관심도 매우 크다. 생명공학이 21세기에 가장 크고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학문이 될 것이라는 그의 예측도 이런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이러한 입각점 때문에 그는 반문명론자들 사이에서 꽤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
목차
1. 자본주의의 새로운 프론티어
접속의 시대가 오고 있다
시장이 네트워크에 밀리는 날
무게 없는 경제
지적 재산의 독점
서비스 세상
인간 관계의 상품화
삶으로서의 접속
2. 문화를 고갈시키는 자본주의
자본주의의 새로운 문화
문화의 광맥을 찾아서
탈근대
접속자와 비접속자
문화와 자본주의의 생태학을 향하여
책 속으로
통신혁명과 미래의 네트워크 세계에 대한 대담한 전망에도 불구하고 현실을 보면 세계 인구의 65퍼센트가 평생 전화를 걸어본 적이 한번도 없는 사람들이고 40퍼센트는 전기가 안 들어오는 곳에서 살고 있다.
온갖 종류의 관계가 우리의 생활의 한가운데로 온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데카르트의 명제는 <나는 접속한다.그러므로 존재한다>라는 새로운 명제로 바뀌었다.
(자신은 연극배우로 그리고) 세계를 연극 무대로 보는 데 익숙한 새로운 시대(탈근대)의 남녀에게는 상업세계가 제공하는 대본, 무대, 다른 배우, 청중에 접속할 수 권리를 끊임없이 사는 것이 자신들이 거느리고 살아가는 다양한 인격을 살찌우는데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연기를 할 수 있고 변신을 할 수 있는 능력은 생존의 필수 조건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변화하지 않는 것이라고는 변화뿐인 세상에서 모든 것이 하루 아침에 퇴물이 된다.....소유는 모든 것이 휙휙 바뀌는 풍토에 적응하기에는 너무 느려터진 생각이다. 과학기술이 급속히 발전하고 경제활동이 어지러울 만큼 빠르게 진행되는 세상에서 소유에 집착하는 것은 곧 자멸하는 길이다.
< 현실의 수효는 관점의 수효> 탈근대적인 사유방식을
<나는 나와 주변상황의 합>이라 요약---오르테가
싸게 사들이고 비싸게 팔아치우는 것을 금과옥조로 삼아 우리의 생활을 끊임없이 담금질한다. 재산을 모으는 것은 세상살이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사실을 커가면서 배운다. 내가 누구인지는 내가 무엇을 가졌는지와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을 배운다. 이 세상은 상품을 교환하고 남부럽지 않을만큼 재산을 누려보겠다는 원초적 충동에 의해서 굴러간다.
소유 관계와 시장 교환의 시대를 풍미했던 다양한 철학은 그 시대의 의미를 정의하는데 이바지했다. 마찬가지로 새로운 통신 기술과 이 기술을 가지고 우리가 만들어 내는 네트워크 자체가 우리가 접속을 추구하는 목적은 아니다. 네트워크는 새로운 시대에 펼쳐질 인간의 행로를 새롭게 상상할 수 있는 세계로 들어가기 위한 관문이요, 입구일 뿐이다. 접속 관계의 사회학적, 정치적 의미를 정의하는 작업은 여전히 미완의 숙제로 남아 있다.
새로운 인간형이 탄생하고 있다. 그는 사이버스페이스의 가상 세계 안에서 자기 몫의 인생을 즐기고 네트워크 경제가 돌아가는 이치를 잘 알고 물건을 쌓아두는 데는 관심이 없지만 흥미롭고 신나는 체험에는 관심이 많고 온라인 세계와 오프라인 세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들 수 있고 가짜든 진짜든 눈앞에서 펼쳐지는 새로운 현실에 자신의 인격을 재빨리 적응시킬 수 있다. 21세기의 주역으로 등장할 이 새로운 인간은 산업 시대를 살았던 부모와 조부모 세대의 부르주아 인간형과는 종자부터 완전히 다르다.
이들은 공동 관심 단지 안에서 성장했고 의료보험 회사를 통해 의료 서비스를 받으며 자동차를 임대한다. 물건은 온라인으로 구입하고 소프트웨어는 으레 공짜려니 여기지만 추가 서비스와 업그레드에는 당연히 돈을 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7초 안에 할 말을 모두 해야 하는 세상에서 살아가고 정보에 즉각 접속하여 인출하는 데 익숙하고 하나에 오래 집중하지 못하며 성찰적이기보다는 찰나적이다. 자신은 노동자가 아니라 경기자라고 생각하고 근면하다는 말보다는 창조적이라는 말을 들을 때 더 뿌듯해한다.
임시직에 익숙하고 과제 해결을 중심으로 편성된 조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부모 세대처럼 단단히 뿌리 박은 삶보다는 아주 유연하고 순간적인 삶을 추구한다. 이념적이기보다는 심리적이고 글자보다는 이미지로 생각하는 쪽이다. 작문 실력은 떨어질지 모르지만 전자 데이터를 처리하는 실력은 한 수 위다. 분석적이기보다는 감정적이다.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만큼이나 많은 시간을 사이버스페이스에 나오는 허구적 인물과 어울리는 데 쏟아 붓는다. 세계는 하나의 무대이며 삶은 공연의 연속이라고 생각한다. 인생의 단계단계마다 새로운 생활 양식을 과감히 받아들이면서 자기를 끊임없이 바꾸어나간다. 실험을 두려워하지 않고 혁신을 도모한다.
이들에게 접속은 생명이다. 접속이 끊긴다는 것은 곧 죽음이다.
미디어 리뷰
‘소유’의 시대는 가고 ‘접속’의 시대 온다 | 조선일보 책마을 박준식 (한림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 2001-05-26 |
한국에서 제러미 리프킨은 엘빈 토플러나 피터 드러커 만큼이나 널리 알려진 사회 비평가이다. 사회과학과 자연과학, 그리고 인문학의 광범위한 영역들을 자유 자재로 넘나들면서 독자들을 매료시키는 그의 힘은 이미 『엔트로피』, 『노동의 종말』, 『생명공학의 시대』 등과 같은 베스트셀러들을 통해서도 입증된 바 있다. 리프킨은 우리가 현재 접할 수 있는 사회 비평가들 중에서 총체적 분석 능력을 지닌 몇 안 되는 사람들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러한 그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사로잡는 또 한 권의 책을 냈다.
독일의 문호 괴테는 그의 대표작 ‘파우스트’에서 지식을 위해 자신의 영혼을 악마에게 팔아치우는 인간의 모습을 그린 바 있다. 만약 괴테가 우리의 생명에 담긴 모든 정보와 영혼마저 시장에서 팔고 사야 하는 이 시대에 살았다면 지금의 인간과 사회를 어떠한 모습으로 그렸을까? 『소유의 종말』(원제 The Age of Access - The New Culture of Hypercapitalism)로 번역된 이 책은 모든 경험들, 급기야는 우리들의 정신마저도 시장의 상품으로 변질되어 가는 이 시대가 인간과 사회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를 묻고 있다.
리프킨이 보는 우리의 시대는 무게 없는 자본주의, 마찰 없는 전자 상거래, 혹은 인터넷의 무한정한 공짜 세계의 유토피아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이 책이 그리는 세계는 원하는 모든 것들을 ‘소유’ 보다는 ‘접속권’의 형태로 포장하여 이에 대한 접근의 권리를 구입하는 사람들만 즐거움을 허용하는 ‘초자본주의’의 세계이다. 이 세계의 주체는 문화 상품을 생산하고, 분배하고, 평가하며, 입장권을 판매하는 거대한 네크워크이다. 무수한 사람들, 조직들이 네트워크의 사용권을 얻거나, 자격증을 따기 위해 광적으로 경쟁한다. 경쟁에서 승리한 사람들은 초자본주의가 제공하는 문화의 환상을 즐기지만, 탈락한 사람들은 여전히 매표소 주변에서 피곤한 생존 경쟁에 시달린다. 경쟁에서 살아 남은 사람들조차 환각을 유지하기 위해 더 강력하고 짜릿한 문화 상품을 준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의 네트워크는 하루아침에 모래알이 되기 때문이다.
리프킨이 평범한 사회 비평가들과 다른 이유는 항상 현실의 위험을 직시하고, 이를 넘어서는 대안을 부지런히 모색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는 인간의 정신과 문화의 영역까지 완전히 상품화 시켜버린 초자본주의가 스스로 자신의 존재 기반을 갈아 없애려 한다고 지적한다. 건강한 시장 경제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건전한 사회적 신뢰와 문화적 다양성이 함께 존재해야 하지만, 시장이 스스로 그 기반을 먹어치우는 거대한 모순의 수레바퀴가 네트워크로 연결된 초자본주의의 세계를 움직인다는 것이다. 이 모순을 극복하고 시장과 자연, 공동체의 공존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 리프킨의 주장이다.
그의 책은 인간 경험의 모든 것들을 상품으로 포장하여 입장권을 거래하는 이 시대의 세계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이해하고, 우리가 지향해야 할 미래의 문제를 생각하는 데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이 책이 지닌 또 하나의 매력은 수준 높은 번역의 아름다움에 있다. 번역의 어려움을 ‘제2의 창작’이라는 말로 표현하지만, 잘 된 번역은 원본 이상의 즐거움을 줄 수도 있다.
‘접속의 시대’ 공동체는 어디로… | 한겨레신문 정태석 (동해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 2001-07-23 |
청소년들이 정보화 시대의 현실적 모습을 그려 보기란 쉽지 않다. 과학기술 유토피아에 대한 호기심을 장사에 이용하려는 기업들은 많은 사람들을 환상의 세계로 유도하기 바쁘다. 그렇지만 현실은 모두에게 환상적인 삶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 이런 면에서 『소유의 종말』은 정보화 시대에 우리 주변의 삶의 모습이 어떻게 변할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그려 보는 데 도움을 주는 책이다.
이 책이 그리고 있는 새로운 시대의 모습은 시장이 네트워크에 자리를 내주며 소유가 접속으로 바뀌는 세계이다. 한때는 물적 자본의 소유권이 중심이었지만 이제 지적 자본이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 가는 원동력이 된다. 새로운 시대에는 소유권보다 접속권, 이용권이 중요해진다는 것이다. 재화 경제에서 서비스 경제로의 이행, 제품 주기의 단축, 리스, 렌탈 산업의 활성화 등에 따라 기업이나 소비자들은 이제 소유권을 가지려고 하기보다는 접속권을 확보하려고 한다.
그런데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점은 접속권이 소비자들에게 주는 의미와 자본가들에게 주는 의미가 다르다는 것이다. 정보 상품이나 지식 상품의 소비자들에게는 소유가 벗어 던져야 할 짐처럼 여겨질 수 있지만, 이들을 생산하는 자본가들에게는 여전히 접속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정보, 지식 자본의 소유가 중요성을 잃지 않는다. 예를 들어 거대한 다국적 자본들은 여전히 방송 주파수, 광섬유 케이블, 통신위성, 컨텐츠, 상표권, 지적재산권, 정보기술 등을 소유하기 위한 전쟁을 치르고 있다. 그러니 이 책이 주장하는 소유와 함께 시작되었던 자본주의의 여정이 끝났다는 말은 과장일 뿐이다.
하지만 리프킨은 디지털 통신기술의 발달과 문화 상업주의의 시대가 열리면서 기업들이 마케팅 전략으로서 `소비자 공동체'를 형성하여 인간관계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려고 하는 것에 우려를 표시한다. 공론을 활성화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인터넷이 금새 `상업 광고의 경연장'이자 욕망의 해방구가 되어 파편화된 문화의 소비를 부추기고 있다는 점도 그렇다. `공동의 커뮤니케이션'은 약화되고 정보 공유권은 제한되고 있는 접속의 시대가 우리 공동체의 미래를 어떻게 만들어 놓을까? 이것이 이 책이 던져주는 소중한 고민거리이다.
사람들은 더이상 '소유' 않는다 | 서울경제신문 | 2001-05-23 |
미국노동자들의 암울한 미래를 지적한 『노동의 종말』, 생명공학 연구가 불러올 위험을 경고한 『바이오테크 시대』의 저자 제러미 리프킨이 이번에는 『소유의 종말』을 선언했다.
소유가 아니라면 무엇인가. 신간 『소유의 종말』에서 저자는 소유ㆍ상품화와 함께 시작됐던 자본주의가 이제 새로운 국면에 들어섰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더 이상 소유에 연연하지 안고, 단지 접속(access)에 만족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리프킨이 말하는 '접속'이란 접근ㆍ출입ㆍ접근 권리ㆍ임대 등을 모두 포괄하는 개념.
따라서 접속은 단순히 컴퓨터나 네트워크에 접속하는데 한정되지 않는다. 소유를 대체한 접속은 이제 인터넷은 물론 자동차ㆍ주택ㆍ가전품ㆍ공장ㆍ체인점 등 다양한 실물영역을 지배하는 새 주인공이다.
그러나 접속의 시대는 암울하다. 일반적인 서비스는 물론, 예의범절이나 상대방의 호의마저도 돈으로 사는 사태가 벌어지는 등 상품화의 영역이 극단적으로 팽창하게 된다. 그 결과로 문화의 다양성은 점점 훼손되고, 인간의 문명은 위기에 처한다.
이 위기를 막을 리프킨의 대안은 문화적 다양성을 지켜내려는 실천이다.
[인터뷰] 『소유의 종말』펴낸 미래학자 리프킨 인터뷰 | 중앙일보 워싱턴 = 김정수 (경제전문위원ㆍ미 브루킹스 연구소 초빙연구원) | 2001-06-19 |
문화비평가로서, 미래학자로서 전세계에 많은 독자를 확보하고 있는 제레미 리프킨이 최근 저서 『소유의 종말(원제 `The Age of Access` )』 국내 출간을 계기로 중앙일보와 단독 인터뷰를 가졌다.
그가 이사장으로 있는 워싱턴 중심가의 `경제조류재단(Foundation on Economic Trends)` 에서 그와의 `접속` (access)을 시도했다.
- 당신이 말하는 네트워크가 주도하는 새로운 경제체제는 현실성 있는 것인가.
"며칠 전 마이크로소프트(MS)사가 새로운 영업방식을 발표했다. 조만간 MS는 윈도 소프트웨어를 판매하지 않고 매달 그 사용료를 받는 식으로, 소프트웨어 사용 `체험(experience)` 을 팔기로 한 것이다. AOL 타임워너도 마찬가지다. 네트워크 경제는 이미 우리 눈앞에 다가왔다. "
- 접속이니 네트워크니 하는 개념도 `신경제` 와 비슷한 것 같은데.
"소프트웨어 등 신기술로 인해 모든 경제활동이 상호 연결되며 광속으로 재구성되고 있다. 그러나 시장경제체제 또는 시장 중심의 자본주의체제는 속도 면에서 이런 추세를 수용하거나 적응토록 짜여 있지 않다. 시장경제체제에서는 판매자와 구매자가 시장에서 거래를 하고 기업은 거기서 이문을 남겼다.
순수한 네트워크 경제체제에서는 판매자나 구매자가 없다. 공급자와 사용자, 또는 서버와 고객이 있을 뿐이다. 물론 네트워크에서도 물리적.지적 자산은 존재하지만 그 자산은 언제나 공급자가 보유하며 소비자는 일정 시간의 `접속` 을 구매한다. 21세기 중반이 되면 이런 새로운 경제체제가 시장경제체제를 대체할 것으로 본다. "
- 자본주의 체제가 맞게 될 도전을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종래 시장에서의 거래는 불연속적이고 일시적이다. 네트워크를 통한 거래는 연속적이고 항상적이다. `24/7 접속` ( `24시간 1주일 내내` 의 의미로, 항상 접속돼 있다는 신조어)인 것이다. 따라서 시장 경제체제는 재화를 상품화하지만, 네트워크 경제체제는 시간을 상품화한다. 광속으로 연결되는 네트워크 상황에서는 종래의 시장도, 또 시장중심의 자본주의도 이윤을 낼 수 없어 존재가 불가능해질 것이다. "
- 경영 중에 어떤 점이 크게 영향을 받을 것인가.
"물리적 자산에 대한 인식이 가장 크게 바뀔 것이다. 과거에는 물리적 자산이 경제적 부(富)의 척도였다. 그래서 모두가 GM의 최고경영자가 되는 게 꿈이었다. 이제는 나이키사의 사장이 되는 것이 모두의 바람이다. 네트워크 경제 속에서 부동산.생산시설.재고 등은 장부상 자산일 뿐 기업에 사실상 부담이 된다. 이제 기업들은 지적자산만 보유하고 물리적 자산을 보유하려고 하지 않으며, 필요한 것은 아웃소싱.하청 등을 통해 구하려 한다. `소유로부터 접속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
- 또 다른 변화는.
"주요생산이 `산업 생산에서 문화 생산` 으로 바뀐다는 점이다. 소니.디즈니.AOL 타임워너 등 새로운 경제주도기업들이 판매하는 콘텐츠가 뭔가. 콘텐츠란 `인류의 이야기와 체험` 이다. 이들 기업은 지구 구석구석에서 창출돼 수천년 동안 축적돼 있는 문화유산을 발굴해 유료 상품화하는 셈이다. 나는 이 새로운 경제를 `체험 경제` 라 부른다. "
- 이런 변화가 좋은 것인가, 나쁜 것인가.
"상황전개에 따라 다르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기업들은 자기의 경제활동이 환경 등 외부에 대해 야기하는 비용을 부담하지 않는다. 그러나 네트워크 체제에서 비용은 항상 생산자에게 머문다. 따라서 환경 등 외부비용도 최소화하려고 애쓸 것이다. 그것이 유익한 점의 하나다. 예를 들어 캐리어 사는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에너지를 많이 쓰고 프레온 가스로 지구온난화 문제를 야기하는 에어컨을 만들어 파는 회사였다.
하지만 네트워크 체제에서는 사용료를 받고 `시원한 삶을 서비스` 하는 회사가 된다. 에너지.프레온 가스 등의 비용을 줄이려 하지 않겠는가. 반면 농산품 종자 개발회사인 몬산토의 경우 앞으로 (지적)소유권을 활용, 몬산토 종자를 사용하는 모든 농가에게 사용료를 요구하게 될 것이다. 이는 유해한 네트워크의 예다. "
- 산업분류 자체도 바뀔 것으로 보는데.
"그렇다. 전체 경제는 5~6가지 산업으로 분류될 것이다. 이동.오락.연예.금융.건강.교육, 그리고 주거생활 부문으로 재편될 것이다. 각 부문은 네트워크를 통해 모든 관련 서비스를 소비자에게 제공할 것이다. "
- 근로자의 생활도 많은 변화를 겪을 텐데. `노동의 종말` 은 여전히 유효한가.
"유효한 정도가 아니라 『노동의 종말』에서 예견했던 기술여건 변화에 따른 실업의 급증 현상은 이제 전지구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인공지능과 로봇과 같은 새로운 기술과 기계가 근로자, 특히 저임금 근로자들의 노동을 대체하게 되면서 21세기 중반이면 지구인구의 5%가 인류 전체가 필요로 하는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해 낼 것이다. "
- 그러면 나머지 95%의 근로자는 어찌되는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급속하게 늘어나는 체험산업이 이들을 흡수하는 것이다. 관광산업의 경우 앞으로 7년 뒤에는 국내총생산(GDP)의 20%를 담당하게 될 것이라고 장담들 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오락.게임.음식.건강.복지 등 다른 체험산업으로 확산되며 새로운 고용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둘째 대안은 신기술 또는 여기서 창출되는 이득의 일부에 과세해 이를 고유문화와 건강한 시민사회를 유지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시민사회단체에 지원함으로써 또다른 고용 기회를 만드는 것이다. 미국에선 이미 시민단체가 GDP의 6%를 창출한다는 추산도 있다. "
- 시민단체에 거는 기대가 큰 것 같다.
"향후 네트워크 경제 속에서 그들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특히 문화 상업주의가 지배하는 미래의 경제 속에서 그래도 문화 다양성을 보존하는 역할을 할 것은 시민단체일 것이다.
시장 중심의 자본주의 체제가 생물학적 다양성을 없애고 천연자원을 고갈시켰듯, 문화자원을 발굴해 상품화하고 네트워크를 통해 전세계적으로 판매하는 체제도 문화 다양성을 퇴화시키고 문화자원을 고갈시킬 위험성을 갖고 있다. 이것이 `문화와 상업의 대충돌` 이다.
하지만 문화는 여전히 상업과 정부가 설 수 있는 기반이자 원천이다. 문화 지상주의를 주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상업과 문화는 병존할 수 있어야 한다. 세계화의 성공은 문화 다양성이 유지될 때만 가능하다. 그래서 나는 요즈음 강연할 때 `세계문화기구(World Culture Organization)` 를 창립해야 한다고 주장하곤 한다. "
나는 접속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 경향신문 책마을 김민아 기자 | 2001-05-26 |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고 말했다. 현대인은 이를 당당히 패러디한다. ‘나는 접속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고.
‘소유’의 개념과 함께 시작된 산업자본주의가 막을 내리고 있다. 대신 ‘접속’(access)이란 개념을 앞세운 문화자본주의가 외연을 넓혀간다. 시장은 네트워크에게 자리를 내주고 판매-구매자의 관계는 공급-사용자의 관계로 변화한다. 노동의 상품화가 산업시대의 특징이었다면 새로운 질서에서는 문화와 놀이가 상품화된다.
1995년 『노동의 종말』을 펴내 노동시간 삭감운동의 기폭제 역할을 했던 미국의 사회비평가 제러미 리프킨은 신작 『소유의 종말』(원제 The Age of Access·이희재 옮김·민음사)을 통해 ‘접속’으로 대표되는 인류의 현재와 미래상을 제시하고 있다.
상품의 주기가 짧아지면서 오늘날의 소비자는 새로운 서비스를 다 경험할 수 없게 됐다. 어느새 더 개선된 후속 모델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소유라는 발상은 이런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다. 새로운 네트워크 경제에서는 임대료, 회원권, 구독료, 회비 등을 통해 상품이나 서비스에 단기간 접근할 수 있는 권리를 얻는 것이 구입해서 장기간 소유하는 것보다 매력적인 대안이다.
기업도 이같은 추세에 맞춰 달라지고 있다. 제품을 경량·소형화하고, 사무실 공간이나 창고를 축소하고, 리스와 아웃소싱으로 몸집을 줄인다. 스포츠용품 업체인 나이키가 대표적 사례다. 나이키는 공장도, 기계도, 설비도, 부동산도 없다. 대신 동남아시아에 광범위한 공급업자 망을 구축, 본사에서 디자인한 제품들을 생산하게 할 뿐이다. 광고와 마케팅도 아웃소싱했음은 물론이다.
이런 관점에서라면 소유가 접속으로 바뀌는 것은 효율적이고 생산적인 변화로 보인다. 표면적으로는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소유라는 개념이 인간의 자율성을 확보하는 훌륭한 수단으로 기능해 왔음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재산을 소유하지 않고 접속만 할 경우 개인적 자부심과 책임감은 희미해지고 개개인은 타인에게 더 의존하게 된다.
그 타인은 누구인가. 인터넷을 예로 들어보자. 처음 접속하려면 서비스 제공업체에 가입해야 한다. 또 개별 사이트에 접근하려면 검색엔진의 힘을 빌려야 한다. 이들이 ‘문지기’(gatekeeper)다. 문지기가 네트워크의 문을 열어주면 그 ‘안’에서는 새로운 가능성이 무한히 열리지만, ‘밖’에서는 생존을 위협받는 지경에 몰릴 수도 있다. 이른바 ‘디지털 격차’다. 아직도 세계 인구의 65%는 전화를 걸어본 적이 없고, 40%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곳에서 살고 있다. 세계 인구의 5%에 불과한 북미지역에 전체 인터넷 사용자의 절반 이상이 거주하는 반면, 세계 인구의 20%를 차지하는 남아시아에는 인터넷 사용자의 1% 미만이 산다.
적절한 교육기회와 생활수준을 보장해 모든 사람이 컴맹에서 벗어나도록 하면 문제가 해결될까. 디지털 격차는 어느 정도 해소될지 모르지만, 접속의 시대가 몰고온 문명의 위기로부터 근본적으로 자유로워지는 것은 아니다. 보다 거시적인 해결방안은 문화적 영역에서 모색돼야 한다는 것이 리프킨의 주장이다. 인터넷에 자유로이 접속할 수 있는, 혜택받은 인간들을 보라. 그들은 공동체의 가치를 전수해온 진짜 문화 대신 상업적 오락물과 상품화된 체험이 판을 치는 가짜 문화에 볼모로 잡혀 있다. 맥도널드와 스타벅스와 할리우드 영화로 상징되는 획일화된 문화는 각 지역의 고유한 문화를 파괴하고 있다. 리프킨은 지역에 뿌리를 둔 문화적 다양성을 지키고 고양시키는 것만이 인류문명을 유지하고 새로운 네트워크 경제의 파멸을 불러오지 않는 길이라고 강조한다.
사족을 달면, 리프킨은 대단하다. 그는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과거와 현재와 미래, 인문과학과 자연과학을 자유로이 넘나드는 박람강기(博覽强記)를 자랑한다. 물론 남다른 노력이 뒷받침됐다. 350권의 책과 1,000여편의 논문, 5만장의 색인카드를 참고하느라 이 책을 쓰는 데 6년이 걸렸다고 한다.
감동까지 돈으로 계산된다고? | 한국일보 하종오 기자 | 2001-05-24 |
'고객 감동'
요즘의 모든 기업들이 내세우는 이 감동적(?) 광고 카피에 숨어있는 자본주의의 무한한 욕심을 어떻게 할 것인가. 이제 자본주의는 상품을 파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감동까지 팔려고 한다. 세상 만사, 가만히 있으려는 모든 것까지도 자본은 돈으로 환산해 '평생 만족'을 주겠다고 한다. 모든 인간활동이 돈으로 거래되는 세상이다.
제러미 리프킨(56)은 이러한 자본주의의 새로운 면모를 보고 "소유의 시대는 종말을 고했다"고 통찰한다. 그가 보기에 새로운 사회를 '정보화 사회'라고 부르는 것은 산업시대를 '인쇄 사회'라고 부르는 것만큼이나 협소한 개념이다.
대신 미래는 '접속의 시대'라고 분석한다. 『노동의 종말』(1995) 『바이오테크 혁명』(1998)에 이어 세계경제의 거시적 흐름을 조망한 그의 세번째 저작 『소유의 종말』의 원제목은 바로 '접속의 시대(Age ogf Acsess)'이다.
산업시대는 소유의 시대였다. 기업은 더 많은 상품을 팔아 시장 점유율을 높이고, 소비자는 보다 많은 상품을 시장에서 사들여 소유하는 것으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해야 했다. 그러나 이제 기업들은 소유를 부추기지 않는다.
대신 그들은 고객의 관심, 체험, 감동에 접속해 그들의 시간을 장악하려 한다. '상품 교환'이 아닌 '경험 접속'으로, 자본주의는 완전히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리프킨은 해석한다.
기업 자체의 변화부터 그는 고찰했다. 모든 기업들은 공장을 소유하지 않고 브랜드만으로 운영되는 나이키 같은 회사가 되고 싶어 한다. 포드는 굳이 자동차를 팔려고 하지 않고 임대해 고객과 지속적 관계를 맺으려 한다. 맥도날드 체인점 주인은 브랜드에 잠시 접속할 수 있는 권리를 사는 것뿐이다.
시장 점유율보다는, 고객의 '시간 점유율'을 높이려는 것이 기업들의 전략이다. 타인의 시간, 타인의 배려와 애정, 타인의 관심과 공감을 매매와 직결시키는 이러한 전략은 '휴식'을 패키지로 제공해 성공한 유럽의 여행사 클럽 메드에서도 확실하게 알 수 있다.
"특별한 몇 분을 위해서만 준비했습니다"라는 식의 요즘 한국에서 유행하는 광고에서도 소유보다는 특별함에의 접속 심리를 부추기는 자본의 의도를 간파할 수 있다.
리프킨은 이처럼 인간의 모든 경험을 상품화하는 접속의 자본주의가 사실은 자본주의 자체의 토대를 무너뜨리고 있다고 주장한다. 감동은 바로 문화적 요소다.
이제 자본주의는 인류가 수천 년간 발전시켜온 오지의 문화적 다양성까지 샅샅이 발굴해 상품화하 고 있다. 토착음악과 현대음악을 결합한 이른바 '퓨전 음악'이 그 한 예다.
라틴아메리카 민중의 연대와 자부심을 나타냈던 살사 음악은 제1세계 음악 팬의 입맛에 길들여지는 과정에서 김빠진 감상적 음악으로 변질됐다. 인간 가치의 마지막 보루라 할 수 있는 문화마저 상업화를 위한 재료의 공급원으로 전락했다는 사실, 이것이야말로 자본주의적 시민사회의 기반을 허무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정보화사회라고 사람들이 컴맹에서 벗어나고, 사이버스페이스를 누빈다고 해서 접속의 시대가 지닌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감동까지 포함하는 존재의 모든 측면이 유료활동으로 바뀔 때, 인간 체험의 풍부한 다양성이 상실될 때, 인류는 생물 다양성을 잃는 것보다 더한 위협에 직면하리라는 것이 그의 결론적 경고이다.
리프킨의 조망과 글쓰기는 단연 거시적이다. 같은 시대를 논하더라도 그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나 미래학자 존 네이스비트와는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한다. 그들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역설할 때, 리프킨은 인문ㆍ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을 종횡하며 문명의 조류를 짚어내고 비판하며 대안적 전망을 역설한다.
『노동의 종말』로 세계적으로 폭발적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노동시간 감축 운동의 기폭제 역할을 했고, 유전자 변형식품 반대운동으로 '식품 테러리스트' '과학계에서 가장 증오하는 인물'로 꼽히기도 한 그의 실천적 공부가 이번 저서에서도 드러난다.
"지리적 공간에 뿌리를 둔 문화적 다양성을 지켜나가는 것만이 인간의 문명을 유지할 수 있는 길이다."
지적자산 시대의 도래 | 전자신문 북서핑 김문조 (고려대 교수) | 2001-08-11 |
『엔트로피』『노동의 종말』『바이오테크 시대』 등의 저자인 제레미 리프킨은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사회비평가이자 미래연구가다.
리프킨은 이 책의 서론에서 ‘소유의 시대는 가고 접속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선언한다. 의사소통망의 확장과 더불어 물질보다 정신, 교환보다 체험, 사유보다 공유, 공간보다 시간, 노동보다 놀이가 보다 큰 가치를 갖게 된다는 것. 저자는 이같은 일련의 이행과정을 ‘소유에서 접속’이라는 표현으로 응축한다.
접속의 시대에는 자산을 장기적으로 보유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오히려 불리하다. 이런 주장은 무어의 법칙이 직접적으로 적용되는 지능형 상품은 물론 자동차, 냉장고, 가구, 백과사전 등 일용 상품에 이르기까지 해당되는 현상이다. 할부금을 미처 갚기도 전에 퇴물화돼버리는 물품을 왜 사들여 애지중지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또한 접속의 시대에는 ‘규모의 경제’가 ‘속도의 경제’로 전환된다.
기업은 오랜 기간동안 건전성·우량성의 지표로 간주돼온 용지·설비·기계·현물·유동자산 등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무게 없는 경제’에 걸맞은 다이어트에 매진해야 한다.
새로 부상하는 네트워크형 경제체제에서는 이윤창출과 직결되지 않는 인프라 구축 비용을 절감하고 계약을 통해 첨단설비를 채택해야 한다. 또 경제환경의 변화에 신속히 대응하기 위해 리스나 아웃소싱을 선호하게 된다.
이런 ‘탈(脫) 물질화’가 촉진되는 시대의 전형적 선도기업으로 리프킨은 나이키사를 지적한다. 내세울만한 공장도 기계도 설비도 없는 나이키 본사는 단지 세계 각처에 산재한 ‘생산협력업체’들과 접속돼 있는 연구 조직에 불과하다. 법적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것이란 디자인 기법 및 광고마케팅 원리뿐이다. 더구나 90년대 들어서 현대 기업활동의 중추로 꼽혀온 광고마케팅 업무까지 정리함으로써 지금의 나이키는 운동화와 같은 물리적 상품이 아닌 ‘나이키’라는 개념을 파는 회사로 바뀌었다.
이같은 접속의 논리는 경제 영역에서 뿐만 아니라 일반인의 생활이나 의식세계에까지 확산되고 있다. 이전까지 효율적인 물품 생산과 교환이 중시됐다면 이제부터는 생각과 마음의 관리가 새로운 부가가치의 원천으로 대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리프킨은 향후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예속이 완화될 것이라고 낙관적 전망과는 상이한 견해를 토로한다. 단적 사례로 지난 30여년간 급성장한 체인점의 융성을 든다. 체인 가맹점은 종전의 단독 자본가가 가지고 있던 권리를 행사하지 못한다. 다만 본사가 제시하는 약관 하에 일정기간 ‘접속’할 수 있는 기회만 부여받고 있다. 한마디로 유형자산에 대해 제한적 권리를 확보하는 대신 무형자산에 관한 권리는 전적으로 포기한 상황이라는 주장이다.
‘문화를 고갈시키는 자본주의’라는 표제를 붙인 제2부에서 저자는 디지털 통신기술을 근간으로 하는 하이퍼 자본주의 체제를 문화 자본주의 체제로 재규정하고 그 구성·동향·전망 등을 상세히 설명한다. 접속 경제의 등장과 함께 지금까지 인류역사상 단 한번도 시장에 흡수된 적 없는 문화가 경제영역으로 끌려 들어가고 있다는 것. ‘산업자본주의에서 문화자본주의로’라는 명제로 축약할 수 있는 이같은 문화의 상품화 경향은 완전성을 추구하는 자본주의의 새로운 모습으로 묘사되고 있다.
문화자본주의시대에 가치창조에 가장 크게 기여할 수 있는 대상으로서 리프킨은 생활체험을 든다. 체험산업·체험경제야말로 대량생산체제로 인해 그 효용성이 한계에 달한 물질적 상품을 대신할 수 있는 새로운 이윤창출의 보고라는 설명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체험산업은 토지의 상품화(인클로저 운동)에서 물질의 상품화 및 서비스의 상품화에 이은 자본주의 진화과정의 최종 단계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체험산업의 전형은 관광산업이다. 오늘날의 체험 욕구는 체험 그 자체를 추구한다기보다 조작적·모사적 체험을 지향한다. 놀이공원·야외극장·휴양지·자연농원 등 의도적으로 설계된 장소에 티켓을 사들고 입장하는 관람객은 곧 한시적 체험을 향유하려는 접속 경제의 ‘꼭두각시’에 불과하다.
이에 따라 ‘교양으로서의 문화’는 우리의 감각을 기만하고 우롱하는 단순 오락으로 전락한다. 반면 상품화된 문화를 제공하는 네트워크 통로를 장악한 거대 자본이나 조직은 개인의 문화활동을 지배하게 된다. 저자는 이런 문화의 식민화 경향에 필적하기 위해 대지와의 교감에 근거한 문화생태학적 대응을 제안한다.
‘소유의 시대’ 가고 ‘접속의 시대’ 온다 | 한겨레신문 노증기 (한신대 사회과학부 교수) | 2001-05-29 |
『노동의 종말』과 『바이오테크 시대』로 잘 알려진 제러미 리프킨이 내놓은 최신작 『소유의 종말』은 그 원제가 『접속의 시대』(The Age of Access)이다. 새 천년의 전환점에서 미래학자 리프킨이 던진 화두는 '소유와 접속'의 이원론이었다.
지난 수백년 산업자본주의사회를 지배했던 개념은 물질적 소유였다. 이제 탈산업 자본주의사회를 지배하는 이념은 접속이 되었다. 접속은 문화생산이 지배하는 시대, 마지막 자본주의시대를 관통하는 원리로 문화적 자원과 체험을 일시적으로 사용하는 권리를 말한다.
접속은 단순한 인터넷 접속을 넘어서서 현대 사회관계의 핵심원리로 포착된다. 접속한다는 것은 예컨대 콘도미니엄 이용권처럼 소유하기보다는 네트워크관계망 속에 들어가 일정 기간 동안 서비스를 이용할 권리를 얻는 것을 말한다. 정보화와 탈산업화, 네트워크경제, 지적 재산권의 독점과 이용, 서비스 중심 경제, 인간관계의 상품화, 국민국가의 쇠퇴 등 현대 사회변동의 본질은 접속에 있다는 것이 리프킨의 주장이다. 그는 소유와 접속이라는 대립 개념을 축으로 물적 생산과 서비스·문화생산, 노동과 놀이, 시장과 네트워크, 공간 중심의 사회관계와 시간 중심의 사회관계 등의 이원론적 사회관을 제시하고 이제 소유의 시대가 종말을 고하고 있다고 설파한다.
현대 문명의 흐름에 대한 리프킨의 예언자적 직관은 '우리의 삶 자체가 상품으로 바뀌고, 우리는 우리 삶의 소비자가 되어버린다'는 비판에서 절정에 이른다. 접속의 시대에는 공간과 물자의 상품화를 넘어서 인간의 모든 경험과 시간, 삶 전체가 돈을 내고 체험하는 공연, 오락, 환상으로 판매된다. 이에 대한 리프킨의 대응방안은 상업영역의 침범에 대해 문화영역을 소생시키는 것이다. 그는 제3부문, 문화부문을 재구축하기 위한 풀뿌리 시민교육과 시민 사회조직의 정치세력화에 희망을 건다.
『소유의 종말』의 강점은 현대사회에 대한 과감하고 근본적인 문제제기에 있다. 그러나 많은 미래학적 논의들이 그러하듯이 문제의식에 비해 논리적인 근거는 상대적으로 취약하다. 이원론의 단순논리는 이 저작의 눈에 띄는 약점이다. 더욱이 접속이 소유와 대립하는 개념이며 소유가 소멸하고 있다는 그의 과감한 주장을 쉽게 수긍할 수는 없다. 그가 인정하듯이 접속과 무관할 뿐만 아니라 생계를 위한 소유조차도 힘겨운 80%의 인구가 있기 때문이다. 소유하고 접속할 능력을 가진 20%가 나머지 80%와 맺고 있는 관계의 핵심은 역시 '소유'에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또 대안으로 제시한 대로 시민운동으로 문화적 다양성과 생물 종의 다양성을 지킨다면 과연 압도적인 상품화경향이 극복될 수 있을 것인가?
문화자본주의시대 새코드 ‘접속’ | 문화일보 북리뷰 정동근 기자 | 2001-05-30 |
『노동의 종말』(1995)을 통해 전세계적인 노동시간 단축운동의 기폭제 역할을 했던 저자의 사회비평서. 원제목 『접속의 시대(The Age of Access)』가 말하듯 ‘접속’이라는 개념이 함의하는 인류의 현재와 미래상을 제시한다.
소유의 개념은 산업자본주의가 농후해질수록 그 의미가 퇴색하고 그대신 접속 개념의 문화자본주의가 광범위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주장이다. 저자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구입해 소유하는 것보다 임대, 회원권, 구독료, 회비 등의 형태로 단기간 접근할 수 있는 권리를 얻는 것이 갈수록 매력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소유라는 개념이 역사적으로 인간의 자율성을 확보하는 수단이 돼왔음을 직시할 때, 소유가 사라지고 접속만 남을 경우 개인의 자부심과 책임감이 약화되는 한편 타인에 대한 의존만 강화될 수 있다. 저자는 이때 문화적 영역에서 해결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것도 상업적 오락물로 치장된 가짜 문화가 아니라 공동체의 가치를 지닌 진짜 문화를 바탕으로 문화적 다양성을 고양하자고 제의한다. 이것이 인류문명을 유지하는 유일한 방안이라고 강조한다.
'접속능력'에 삶의 질 달렸다 | 동아일보 책의향기 김성기 (문화비평가) | 2001-05-26 |
“더 이상 ‘소유’는 필요하지 않다. 온갖 물건을 빌려쓰고 인간의 경험 세계까지 돈을 주고 사는, 자본주의의 새로운 단계가 시작되었다.”
『노동의 종말』(민음사)로 유명한 저자 제러미 리프킨은 우리 시대의 현주소를 이렇게 갈파한다. 소유 중심의 자본주의 시대에서는 물건을 사고 파는 것이 우선이었지만 이제는 온갖 유형의 상업 네트워크가 인간 생활을 거미줄처럼 에워싸고 있으며 그 네트워크에 접속하는 일이 관건이라는 것이다. 실물 세계의 방대한 자료를 거느리며 시대 진단의 예지를 발하는 이 책은 『노동의 종말』 후속편으로 읽어도 무방하지만, 『접속의 시대(The Age of Access)』라는 원제 뒤에 ’하이퍼 자본주의의문화’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된다. 먼저 1부는 ‘접속의 시대’가 도래하는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물리적 경제는 움추러드는 반면, 정보와 지적 자산의 뭉치에 얹혀 있는 이른바 신경제 또는 네트워크 경제의 새로운 메커니즘이 조명을 받는다. 이때 접속의 시대를 지배하는 경영학적 전제는 시장의 시대를 지배하던 전제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시장은 네크워크에게 자리를 내주고 판매자와 구매자는 공급자와 사용자로 바뀐다. 예전에는 ‘판매자와 구매자’가 시장의 주역이었다면 이제는 ‘공급자와 사용자’가 주역이라는 것.
이렇게 경제활동의 기본 구도가 달라짐에 따라 기업의 존재 방식도 당연히 달라진다. 생산 중심에서 마케팅 중심으로, 판매 중심에서 (고객과의) 관계 구축 중심으로 궤도 수정하는 기업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2부는 이 같은 자본주의의 새로운 단계가 우리 삶과 문화를 고갈시키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접속의 시대는 모든 인간 경험의 상품화가 가속화되는 시대라는 것이다. 1부의 다소 중립적인 서술과는 달리 저자의 사회학적 진단과 비평이 강하게 개입한다. 지난 수백년 동안 물리적 자원을 소유권이 부여되는 상품으로 전화하는 데 역점을 두어온 우리는 이제 유료로 제공되는 개인적 경험과 오락으로 문화적 자원이 전환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주장이다.
인간의 삶에 의미를 주는 공동의 경험은 미디어 시장으로 끌려 들어가서 상업적으로 개조되고, 공동체가 공유해온 문화가 네트워크 경제에서 자꾸만 파편화된 유료 경험으로 쪼개지면서 접속에의 권리도 자연히 상업적 영역의 품으로 이동한다는 것. 이를 일컬어 ‘문화적 상업주의의 승리’라고 한다.
이 대목을 놓고 이미 서구 학계에서는 논란이 분분하다. 문화 영역과 상업 영역의 이분법이 실제 가능하냐는 반론과 더불어 저자가 ‘접속의 시대’의 어두운 면만 너무 강조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이에 대한 저자의 입장은 단호한 편이다. 에릭 프롬이 현대인에게 ‘소유냐 존재냐’를 다그쳤듯이 이제는 ‘접속이냐, 존재냐’를 깊이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는 것.
그래서, 그는 묻는다. “재산을 소유하는 것보다 접속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는 것이 더 중요한 세상, 문화 자체가 최고의 상품으로 각광받는 세상, 인간 관계에 항상 돈이 개입되고 체험도 돈을 내야만 할 수 있는 세상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
바로 이 물음을 매개로 우리는 제러미 리프킨과 본격 대화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의 문제 제기는 1990년대 이후 우리 사회를 화려하게 수놓았던 ‘문화의 시대’라는 명제를 근본적으로 재고하기를 촉구하는 것이다.
그간 경제 경영 방면에서 정보화, 글로벌 경제, 문화 산업 등에 대한 숱한 논의가 소개된 바 있으나 리프킨의 경우처럼 현장감 있는 보고는 드물었다. 개인적으로 우리 지식계에서 이 같은 수준의 시대 진단서를 산출하지 못했다는 점이 퍽 아쉽고 부끄럽다. 번역서인데도 전혀 번역서로 읽히지 않는다. 우리네 사회과학의 번역 풍토에 견주어 볼 때 ‘이보다 더 좋은 번역은 없다’고 감히 단언할 수 있으리라.
새로운 자본주의 키워드는 ‘접속’ | 국민일보 김현덕 기자 | 2001-05-29 |
“가능한한 많이 갖는 것이 행복이었던 자본주의가 변하고 있다. 소유의 욕구는 줄어들고 접속이 늘고있다. 소유를 교환하던 시장도 ‘일시적 사용’을 의미하는 접속권을 사고파는 네트워크가 대치해 가고 있다. 판매자와 구매자의 재산 교환도 서버와 클라이언트의 단기 접속으로 바뀌었다”
『노동의 종말』을 쓴 사회비평가 제러미 리프킨은 새 저서 『소유의 종말』(원제:The Age of Access·민음사)에서 이 시대를 ‘접속의 시대’로 명명한다. 컴퓨터와 인터넷의 등장으로 보편화된 접속이란 용어를 경제 사회 문화적 측면으로 확장한 개념이다.
접속의 시대에는 상품을 팔고 무료 애프터서비스를 제공하는 데에 주안점을 두던 산업의 시대와는 정반대의 거래가 이뤄진다. 상품이 오히려 무료로 제공되고 후속서비스가 수익을 낸다. 휴대전화 컴퓨터 정수기 심지어 자동차도 마찬가지다.
소유가 비합리적인 행위가 된 것은 끊임없는 기술혁신의 결과다. 잦은 업그레이드로 제품의 수명이 단축되자 소비자들은 제품을 소유하는 대신 일정기간 빌려쓰고 새것으로 바꿔쓰기를 원한다. 기업의 입장도 마찬가지다. 기술혁신과 급변하는 기업환경 속에 장비,부동산,기계 더 나아가 많은 직원을 소유하는 것도 부담스럽게 됐다. 많은 조직을 아웃소싱해서 바깥의 브레인을 이용하고,장비도 리스해서 필요한 기간 동안 사용한 후 반납한다. 자기 사무공간이 따로 없는 IBM직원들은 호텔이 돼버린 회사로 ‘접속’해서 사무실 또는 회의실 사용시간을 예약한다.
할리우드 영화산업은 이런 기업형태의 가장 오래되고 훌륭한 모델이다. 스펙터클영화 시대에 모든 조직을 소유했던 메이저영화사들은 영화제작에서 배급망까지 모든 것을 네트워크화하는데 성공했다. ‘왜 모든 기업이 쇼비즈니스처럼 되나’라는 글처럼 이제 기업들은 햄버거도 신발도 만들지 않으면서 자신의 브랜드에 접속하는 체인점포로부터 더 많은 수익을 올리고 있는 맥도널드와 나이키를 지향한다.
21세기를 ‘정보화 시대’라고 말하는 것은 20세기를 ‘인쇄의 시대’라고 주장하는 것만큼이나 속좁은 정의라고 리프킨은 말한다. ‘접속의 시대’에는 특히 문화가 상업화의 공급원으로 전락한다. 삶의 일부였던 ‘놀이와 문화적 체험’마저 모두 문지기(gatekeeper)의 검문을 통과해야 접속이 가능한 상품으로 바뀐다. 이제 세상은 접속권을 손에 넣을 수 있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로 다시 갈라지게 될 것이다.
하지만 리프킨이 ‘접속’을 ‘소유’의 반대개념이라고 주장한 것 등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에리히 프롬은 불후의 명저 ‘소유냐 존재냐’에서 소유를 ‘끊임없이 새것을 소유하려는 욕망’ 그 자체로 표현했다. 즉 자동차의 ‘보유’가 아닌 계속 새 모델을 구입함으로 해서 존재감을 느끼는 것이 ‘소유’로 프롬의 개념에 이미 리프킨의 접속이란 개념이 숨어 있다. 즉 접속은 자꾸 새것을 사고 헌것을 버리는 ‘낭비적인 소유욕’이 ‘절약적인 소유욕’으로 바뀐 개념으로 해석된다. 접속이란 용어가 너무 많은 현상에 지나치게 도식적으로 적용된 감도 있다.
그럼에도 이 책이 주는 메시지는 강력하다. 인터넷의 확산이후 일어나는 경제 문화 사회 전분야의 전지구적인 변화를 설명하는 포괄적 개념으로서 ‘접속’이 주는 함축성은 매력적이다. 또 이 새로운 소유형태가 인류에 줄 수많은 해악에 대한 2부에서의 경고도 으스스할 정도로 자극적이다.
"나는 접속한다, 고로 존재한다" | 중앙일보 행복한 책읽기 김정수 기자 | 2001-05-26 |
"지금의 시대를 유행처럼 '정보화 사회' 라고 하는 것은 반쪽 개념 규정에 불과하다. 기존 산업화 시대를 인쇄시대라고 부르는 오류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사이버스페이스.정보화 등 디지털 환경 속의 인류는 이제 근대적 의미의 자본주의 사회 단계를 벗어나 전대미문의 새 단계에 급속히 진입하고 있다. 그것의 새 문패는 '소유의 종말 시대' 또는 '접속의 시대' 로 달아야 옳다. 이와 함께 등장한, 종자부터 전혀 다른 새로운 유형의 인류는 '나는 접속한다, 고로 존재한다' 고 외치고 있다. 자, 문제는 이런 변화를 과연 유쾌하게만 볼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
유연한 접근, 매력 넘치는 개념으로 무장한 채 현대사회의 변화를 순발력있게 전망한 신간 『소유의 종말』의 메시지를 몇 마디로 요약하자면 앞의 글처럼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노동의 종말』(민음사) 로 유명한 문명비평가 제러미 리프킨의 이 책이 어슷비슷한 미래 전망서들의 홍수 속에서 돋보이는 것은 인문.사회.자연과학 등 다양한 영역의 현상들을 하나의 흐름으로 짚어내는 저자의 통찰력 때문이다. 사이버스페이스.정보화의 문제를 표현의 자유, 개인정보, 데이터의 흐름 통제 등 고만고만한 차원에서 다루기보다는 '근본적인 문제제기' 가 이뤄져야 한다며 미래 전망의 포석을 넓게 잡는 접근도 설득력있다. 또 기술문명이나 상업주의를 완전히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와 상업성의 생태학을 제창하며 균형을 강조하는 대목에서는 저자의 방향성에 신뢰를 느끼게 한다.
먼저 그는 자본주의가 정보혁명으로 인해 전혀 다른 양태를 보이고 있음에 주목한다. 사유재산은 계속 존재하겠지만 물건을 사고 파는 것이 우선이었던 소유 중심의 산업 자본주의는 상품화된 문화체험에의 '접속' 을 중시하는 하이퍼 자본주의(hyper-capitalism) 로 바뀌고 있다. 즉 이 책의 원제이기도 한 『접속의 시대(The Age of Access)』 가 왔다는 것이다.
그는 요즘 기업들이 공장이나 기계.설비.부동산 같은 유형의 자산을 거의 갖고 있지 않으면서도 '브랜드' 장사만으로 성공을 누리고 있는 나이키 같은 회사를 선망한다든지, 고객들도 차를 사기보다는 새로운 모델이 나올 때마다 갈아치울 수 있도록 빌려 타기를 선호하는 현상 등을 구체적인 사례로 제시한다.
문제는 이같은 접속의 시대가 몰고올 부정적인 측면이다. 인류는 '사이버스페이스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과 밖에서 살아가는 사람' 으로 뚜렷이 나뉘어 교류가 불가능해지고, 네트워크를 장악한 소수의 거대한 다국적 기업들이 접속을 관리함으로써 인간 존재의 운명까지 좌우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특히 문화자원의 상품화는 과도한 영리추구로 인해 결국은 문화 자체를 파괴해버릴 수 있다고 우려한다.
리프킨이 보기에 이러한 문제들은 "교육 기회를 충분히 제공하여 모든 사람이 컴맹에서 벗어나고 사이버스페이스를 제약 없이 누비고 다닐 수 있게 한다고 해" 해결되는 게 아니다. 접속의 시대에는 '시간' 개념이 중시되지만 '지리적 공간' 이야말로 진정한 인간관계와 문화의 원천이라고 그는 말한다.
때문에 "시장에 나와 있는 문화 상품에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길을 터주는 것 못지않게 지역문화를 소생시키는 데도 똑같은 노력을 기울여" 지리적 공간에 뿌리를 둔 문화적 다양성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21세기 최대의 정치적 임무라고 리프킨은 결론짓는다.
이같은 저자의 '색깔있는' 주장에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그는 수백 권의 연구서와 논문을 인용, 새로운 자본주의가 초래할 수 있는 인류 문명의 위기를 설득력있게 보여주고 있다. 현재와 미래 사회의 커다란 밑그림 위에 자신의 가치관을 세워 보고자 하는 독자라면 한번쯤 꼭 읽어볼 만한 역작이다.
■ 제러미 리프킨은… ' 유전자 변형식품ㆍ세계화 반대 앞장'
와튼 경영대학원에서 경제학을, 플레처 법과대학원에서 국제관계학을 공부했다. 현재 자신이 설립한 비영리조직 '경제동향연구재단' 의 이사장으로 있으면서 전세계적으로 강연활동을 하며 여러 나라 정부의 대통령 정책 자문역을 맡고 있다.
유전자 변형식품에 대해 치열한 반대운동을 벌이고, 지난 1월에 열린 다보스 포럼에는 '반(反) 세계화' 를 주장하는 지식인 연대의 대표로 참가하는 등 사회의 공공 영역 수호 운동에도 적극적이어서 '변화를 거부하는 미래사회의 적' 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현대 문명의 부정적인 측면을 지적하고 있는 『노동의 종말』『엔트로피』『바이오테크 시대』 등의 저서를 통해 세계 지식인계에 끊임없는 논쟁거리를 제공해온 그는 "돌이킬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지기 전에 나같은 사람이 자꾸 나와서 중요한 사안에 대해 이의를 걸고 토론을 벌여야 한다" 고 말하는 '주류 사회의 삐딱이'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