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비트겐슈타인/서광사/1994년 4월/388페이지/12,000원
[책소개]
비트겐슈타인이 세상을 떠난 후인 1953년에 출간된 유작으로, 1929년부터 23년간의 강의 노트와 논고를 사후에 책으로 엮은 것. 1부는 지은이 생전인 45년, 2부는 사후인 53년 완성돼 출간됐다. 비트겐슈타인의 후기 사상의 핵심이 담겨 있다. 비트겐슈타인의 전기 사상을 대표하는 《논리철학논고》(1921)와의 대비를 통해 쉽게 이해될 수 있다.
먼저 철학의 성격 및 과제와 관련하여, 언어로 말할 수 있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것이 《논리철학논고》의 목적이라면, 《철학적 탐구》 역시 언어의 오용으로 생기는 문제를 비판하려 했다는 점에서 전·후기의 철학의 성격과 임무는 언어비판적 기조를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논리철학논고》에서 제시되는 언어는 외적으로는 세계에 대한 그림이며, 내적으로는 외연성의 논리구조를 가진 언어이다. 따라서 자연과학적 명제에서 드러나듯, 요소명제는 세계의 사태를 묘사하며 또한 이런 요소명제의 진리값에 의해 복합명제의 진리값이 결정된다.
이런 언어관에 기반해 전기 비트겐슈타인은 세계를 묘사하는 명제들에 대해서만 말할 수 있지 종교나 윤리의 언어는 말할 수 없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철학적 탐구》에서 언어는 인간의 활동으로 이해되며 도구 혹은 게임에 비유된다. 언어가 활동이나 맥락에서 이해되는 한, 언어는 더 이상 《논리철학논고》에서처럼 세계에 대한 대립항으로 간주될 수만은 없다. 또한 도구는 삶의 세계에서 사용될 때 제 기능을 하듯이, 언어도 구체적인 맥락에서 쓰여질 때 유의미하며, 게임처럼 언어도 일정한 규칙에 의해 지배받게 된다. 이런 유비에 바탕하여 후기 비트겐슈타인은 언어게임 이론을 주창한다.
한편, 《논리철학논고》에서 언어의 본질이 세계의 사태를 지시하는 지시적 기능에 국한되었다면, 《철학적 탐구》에서 언어는 인간의 삶의 문맥과 연관된 것이기 때문에 명령이나 질문 등과 같은 다양한 기능과 쓰임을 가진 것으로 이해된다. 이런 다양한 기능들을 묶어줄 언어적 본질이란 없으며 단지 가족유사성만 있을 뿐이다. 또한 《철학적 탐구》는 언어공동체가 특정언어규칙을 준수해야 하는 이유를 단지 규약에 대한 호소가 아니라 삶의 형식의 일치 속에서 찾고 있다. 이런 삶의 형식 개념은 인간의 개념체계가 모든 인간이 공유하는 특성과 문화에 따라 상이한 특성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함축한다.
《철학적 탐구》는 서양근세철학 이후에 인식론적 출발점이자 근거로 설정되었던 자아를 사적 언어비판에 기초해 공박했으며, 그 결과 심신이원론을 논박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 주었다. 아울러 《철학적 탐구》는 기술적 분석이란 새로운 철학방법을 도입함으로써 언어분석철학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 주었다.
[저자 소개]
비트겐슈타인 : 1889년4월26일 오스트리아 빈 출생 공학, 기체역학을 전공하다 케임브리지대 버틀런트 러셀에서 수리철학과 논리학 수학 1차세계대전 참전, 이탈리아에서 포로 1939~47 케임브리지대 철학과 교수 51년 4월29일 암으로 사망.
[미디어 리뷰]
언어는 어떻게 존재할 수 있을까? 한 사람이 말한 일련의 단어는 어떻게 상대방에게 전달되어 뜻을 가질 수 있게 될까? 또 사람들은 이전에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문장을 이해할 수 있을까?
20세기 가장 독창적이고 위대한 철학자 중의 한사람으로 꼽히는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1889~1951)은 논리학 이론과 언어 철학에 관한 독창적 체계를 수립한 사람이다. 그는 단 두 권의 저술인 「논리철학논고」(1921)와 「찰학적 탐구」(53년)로 논리실증주의, 일상언어분석철학의 비조가 됐다.
「논리철학논고」에서 그는 「말해질 수 있는 것은 오직 명제를 통해서만 말해질 수 있으며, 따라서 「모든」 명제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어떤 것도 말해질 수 없다」라는 명제를 통해 「말해질 수 없는 것들이 존재한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철학적 탐구(Philosophische Untersuchuggen)」는 1929년부터 23년간의 강의 노트와 논고를 사후에 책으로 엮은 것. 1부는 지은이 생전인 45년, 2부는 사후인 53년 완성돼 출간됐다. 그는 이 책에서 모든 표상이 공통의 논리적 형식을 공유해야 한다는 가정을 거부함으로써 이전에 자신이 던진 명제에 대해서도 새로운 관점을 가지게 된다.
그는 철학적 문제가 우리들이 일상에서 사용하고 있는 언어의 기능에 대한 오해에서 출발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진실이란 철학자들의 기억, 사유, 단어풀이가 아닌 일상적 대화나 의사소통을 통한 「언어 게임」이라는 개념을 도입해 문제를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는 어떤 것이 「믿음」이라고 불리는 까닭은 그것이 과거의 믿음과 일종의 유사성을 가지게 된 것으로 마치 물레에서 실을 뽑을 때 여러 가닥의 실이 꼬여지듯 하나의 개념은 다른 개념과 유기적 연관성을 갖는다고 봤다. 또 낱말의 형식이 지니는 의미에 대해 우리가 느끼는 당혹감은 「어떤 경우에, 어떤 목적으로 우리는 이것을 말하는가, 어떤 종류의 행위가 이 낱말에 수반되는가」 등을 물으면 자연스럽게 해소된다고 믿었다.
그는 언어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 및 문제 제기를 통해 「더이상 회의가 불가능한 것」으로서의 로고스(언어)를 기반으로 삼았던 서구 철학의 합리적 전통에 심대한 타격을 입혔던 것이다. 그의 「언어 게임」 이론은 독일의 프랑크푸르트 학파와 프랑스 포스트구조주의 등 일련의 「포스트(Post) 주의」에 큰 영향을 끼쳤다.
한국일보 | 박은주 기자 | 2000.11.23
20세기 철학을 비롯한 인문사회과학에 가장 심대한 그림자를 드리운 것이 분석철학이고, 분석철학을 '틀' 지운 것은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이다. 20세기가 낳은 가장 위대한 철학자로서, 상당부분 신비한 삶을 살았고, 워낙 그가 남긴 텍스트들이 난해하다는 여러 가지 사정이 겹쳐 비트겐슈타인 神話가 벌써 형성된 것도 사실이다.
< 철학적 탐구>는 비트겐슈타인의 후기 철학을 대표하는 중요한 저작. 전기 철학의 대표적 저술이 <논리·철학 논고> 라면 후기 사상은 바로 이 책이다. 이 책을 국내 처음으로 완역한 것은 부산대 철학과의 이영철 교수. 번역에 참고될 텍스트는 독일 루즈 캄프의 비트겐슈타인 저작집 제1권을 선택했으며, 영어번역등 현재 나와 있는 주석서들을 참조했다.
짧은 잠언들로 구성된 이 책들은 16년동안 비트겐슈타인이 몰두해왔던 철학적 탐구의 침전물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까다롭다. 즉 이 책에서 비트겐슈타인은 다른 이들의 생각하는 수고를 덜려할 것이 아니라, 도리어 북돋우려 한 것이다. 의미, 이해, 명제, 논리의 개념, 수학의 기초들, 의식의 상태들과 관련된 깊이 있는 사고를 엿볼 수 있는 '고전' 이다.
문화일보 | 1994.0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