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노마드 유목하는 인간
자크 아탈리| 이효숙 역| 웅진씽크빅| 2005.03.17 | 535p
[책소개]
21세기의 새로운 패러다임, 노마드 - 왜 노마드를 말하는가?
21세기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최근 우리 사회는 ‘유목(이동)’이 가지고 있는 힘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며, 유목민(Nomad)적 삶의 방식을 속도의 시대(Speed-of-Thought)에 적용하려는 시도를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잡노마드 사회》(문예출판사, 2002년 발간)를 저술한 군둘라 엥리슈가 말하듯이 이러한 시도는 사막이나 초원 등열악한 환경에서 끈질긴 생명력으로 살아남은 유목민들의 생존전략과 적응양식이 무한경쟁의 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인의 창조적인 욕구와 궤를 같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백과사전에 의하면, 노마드(nomad)는 '유목민', '유랑자'를 뜻하는 용어로, 프랑스의 철학자 들뢰즈(Gilles Deleuze)가 그의 저서 《차이와 반복》(1968)에서 노마드의 세계를 '시각이 돌아다니는 세계'로 묘사하면서 현대 철학의 개념으로 자리잡은 용어이다.
특히 노마디즘(nomadism)은 현대로 들어오면서 그 의미가 확대되어 ‘공간적인 이동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버려진 불모지를 새로운 생성의 땅으로 바꿔 가는 것, 곧 한 자리에 앉아서도 특정한 가치와 삶의 방식에 매달리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을 바꾸어 가는 창조적인 행위를 뜻’하게 되었다. 철학의 영역에서는 각 학문 분야를 넘나들며 “새로운 삶을 탐구하는 사유의 여행을 의미”하고 사회·경제의 영역에서는 정착의 틀에서 벗어나 끊임없이 생성과 파괴를 거듭하며 살아가는 21세기 현대인의 새로운 생존전략을 의미한다.
프랑스의 세계적인 석학이자 미래학자인 자크 아탈리는 이미 그의 저서 《21세기 사전》에서 ‘디지털 노마드’라는 신 개념어를 만들어서 유목의 시대를 예견한 바 있다. 그 뒤 아탈리는 노마드적 삶의 양식과 문화를 일시적 현상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필연적인 패러다임이자 미래 세계를 바꾸는 주된 동력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아탈리는 20년 동안 노마드의 역사와 문화 연구에 천착해왔다. 그리고 그 오랜 연구의 결과이자 인류 문명사의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 책인 《호모 노마드, 유목하는 인간》을 집필했다.
정착민이 발명한 것은 고작 국가와 세금 그리고 감옥이었다!
- 유목민의 시각으로 본 인류사는 어떠할까?
한국사회에서 노마드에 대한 논의는 철학과 사회·경제 분야에서 활발히 논의되어 온 반면, 역사에서는 소극적이었다. 이는 인류사에서 노마드와 정착민의 구분이 뚜렷하게 없었을 뿐만 아니라 승자의 역사인 정착민의 사관이 정설로 널리 알려져 왔기 때문이다. 정착민의 시각에서 노마드의 역사는 ‘무지’와 ‘야만’의 표상(表象)이었고 그들의 삶의 양식인 ‘유목(이동)’은 국가체제를 위협하는 불순한 것으로 여겨져 심지어 국제기구에서도 그들은 개혁(改革)과 개화(開化)의 대상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아탈리는 정착민의 사관을 넘어 6백만 년에 이르는 인류사를 유목민의 시각으로 새롭게 조명했다. 그는 6백만 년의 인류사에서 ‘정주성’은 0.1%에 그치는 시기일뿐이며, 노마드는 불, 언어, 종교, 민주주의, 시장, 예술 등 문명의 실마리가 되는 품목들을 고안해냈지만 정착민이 발견해낸 것은 고작 국가와 세금 그리고 감옥뿐이라고 역설한다.
또한 인류는 두 차례의 세계화와 한 차례의 진행중인 세계화를 통해 급속한 기술문명의 발달을 이루었지만 그때마다 정착민의 노마드 탄압으로 완전한 세계화는 좌절되고 말았다고 한다. 진행중인 세계화는 마지막 정주성 제국인 미국과 ‘정주성’을 위협하는 세 가지 강력한 노마드 세력인 시장, 이슬람, 민주주의간의 대립과 투쟁의 과정이 될 것이라고 아탈리는 내다보고 있다.
자유, 평등의 시대를 넘어 … 박애의 시대로
로마가 3세기에 걸쳐 쇠퇴를 거듭하듯, 마지막 제국인 미국 또한 강력한 노마드 세력에 의해 쇠퇴의 길을 거듭할 것이다. 아탈리는 《21세기 사전》에서 19세기가 자유의 시대, 20세기가 평등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박애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애만이 자유의 이름 으로 소수가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고 평등의 이름으로 다수의 결정을 받아들이는, 시장과 민주주의를 하나로 화합하는 유토피아’를 만들 수 있다고 했다.
저명한 미래학자이기도 한 아탈리에게 인류의 미래는 노마디즘과 정착성 사이에서 어느 하나의 선택이 아닌 그 둘을 동시에 받아들임으로써 진행이 되는, ‘공동의 이익’이란 가치가 중시되는 사회를 말한다. 또한 공동의 이익을 얻기 위해서는 인류가 그간 쌓아올린 기술 문명뿐 아니라 원시 노마드의 전통이나 문화유산을 포함한 정신문화를 존중하는 데에서 실현이 가능하다고 역설한다.
호모 노마드, 유목하는 인간
21세기를 흔히 신 유목의 시대 또는 디지털 노마드 시대라고 부른다. 디지털 노마드란 정보기술(IT)을 갖추고 지구를 떠도는 시대를 상징하는 말로, 자원이 부족한 한국사회에서 이 시대의 흐름을 읽는 것은 필수불가결한 부분이다. 자크 아탈리는 《호모 노마드, 유목하는 인간》의 한국어판 서문에서 한국사회가 세계 어느 나라보다 기술이 앞서고 있는 것은 ‘한국이 자신의 정체성의 노마드적 원천과 미래에 대한 명철한 파악’을 동시에 읽고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인류학자들은 인류가 이성인(理性人, Homo-Sapience)의 단계에서 공작인(工作人, Homo-Faber)의 단계로 변모하면서 새 역사를 도출해왔고 공작인은 현대에 이르면서 창조인(創造人, Homo-Creatrio)의 단계로 전이되고 있다고 진단하고 있다. 호모 노마드는 현실에 머무르지 않고 파괴와 창조를 거듭하는 창조인의 전형으로 21세기를 열어갈 인간형이라 할 수 있다.
아탈리의 《호모 노마드, 유목하는 인간》은 그 동안 잊혀졌던 유목민의 역사를 세계사의 한 축으로 끌어올림으로써, 인류사를 보다 수평적이고 폭넓게 바라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었을 뿐 아니라,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한국 독자들에게 현대와 미래사회의 흐름을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게 해줄 책이다.
[작가소개]
자크 아탈리
자크아탈리 1943년 알제리의 수도인 알제에서 태어났다. 프랑스의 소수 정예 엘리트들이 모이는 그랑제콜에서 공학, 토목학, 정치경제학을 전공했다. 그 뒤 프랑스 최고 지도자 양성 기관인 국립행정학교를 졸업하고 1972년에 소르본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존하는 프랑스 최고의 석학 아탈리는 정치·경제·인문·예술 등 학문의 경계를 넘나드는 연구와 저작으로 ‘파우스트에 가장 근접한 유럽 지식인’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의 저작은 학문의 지형을 넓혔고 미래사회를 여는 예리한 통찰력은 새로운 화두를 생산해냈다. 특히, 20년 동안 천착해온 노마드에 관한 연구는 세계사의 지형을 뒤흔든 연구라고 할 수 있다.
태초 인류는 여행자였다 아탈리는 21세기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6천 년의 정착민 역사가 아닌 6백만 년 노마드의 역사에서 찾고자 했다. 불, 언어, 민주주의, 시장 등 끊임없는 질주와 생성을 통해 얻어낸 노마드의 발명품에 비하면 정착민의 것은 하찮은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아탈리에게 국가는 노마드의 행렬을 잠시 멈추게 하는 오아시스일 뿐 그 이상은 아니었다. 현재 세계 인구의 1/6이 이동을 하며 살고 있고 그들은 기존의 가치와 삶의 방식을 넘어 새것을 창조해내는 삶을 살아갈 것이다. 국경은 허물어지고 마지막 정착민 제국은 시장, 민주주의, 이슬람이란 새로운 노마드 세력 앞에서 마지막 몸부림과 함께 사라질 것이다.
호모 노마드, 유목하는 인간 이 책은 노마드를 야만과 무지의 역사로 폄하한 정착민의 사관(史觀)을 부정하고 방대한 사료 분석과 역사 연구를 통해 유목민의 시각으로 인류 문명을 새롭게 조명한 아탈리의 대표적인 역사서이자 ‘디지털 노마드’ 시대인 21세기 인류의 흐름을 담은 전망서라고 할 수 있다.
아탈리는 1974년 프랑수아 미테랑 사회당 당수의 경제고문으로 현실정치에 참여했고 미테랑 대통령 집권 당시 ‘미테랑의 휴대용 컴퓨터’라고 불리며 대통령 특별보좌관으로 국가 경영을 기획했다. 1990년에는 유럽부흥개발은행 초대 총재를 지냈으며, 현재 프랑스 정부 국정 자문역, 컨설팅 회사인 ‘아탈리 아소시에(A&A)’ 대표, 빈민구제 국제기구 ‘플래닛 파이낸스’의 회장으로 있다. 대표작으로는 《21세기 사전》, 《합리적인 미치광이》, 《지혜에 이르는 길 - 미로》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