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누엘 푸익| 송병선 역| 민음사| 2000.06.01 | 396p
[책소개]
아르헨티나의 한 혁명가가 감옥에 수감되면서 만난 감방동료와의 사이에 일어난 일들을 그리고 있는 소설. 그 감방동료는 게이로서, 세상의 어둠과 싸우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던 혁명가는 정작 가장 밑바닥 인생이며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게이의 존재를 인정하지 못하고 갈등한다. 그의 갈등을 더욱 부추기는 것은 그가 이제 그 게이에게 애정을 품게 되었다는 것이다. 윌리엄 허트가 그 게이 역할로 나와 멋진 연기를 보여주었던 영화의 원작이다.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 37번째.왜 『거미여인의 키스』가 아름다운가?
< 거미여인의 키스>에서, 우리는 어둠 속에서
외롭게 고통받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지만,
우리의 눈에 보이는 것은 영화의 마술과 로맨스이다. New York Times
푸익은 독창적이고도 도발적인 방식으로 사회 문제에 정면으로 대항하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비감정적이고 정밀한 문체로 인간 세계가 아직 희망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매우 아름다운 작품이다(Time Literary Supplement)>. 이 작품에 대해 시인 황인숙은 다음과 같은 시를 썼다. <몰리나의 사랑이 불쾌하지 않은 건 몰리나가 아름다운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는 육체를 벽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몰리나의 가슴은 평화와 우아함과 미소로 가득했다. 몰리나는 진정한 여성이며 진정한 인간이었다. 나는 이 기묘한 사랑 이야기를 들으며 한 편의 판토마임을 생각했다.>
몰리나는 한 남성과 평생을 살면서 그를 주인으로 받아들이고, 그가 껴안으면 두려움을 느껴야 한다고 생각하는, 허울만 남성인 여자이다. 그런데 이러한 태도는 부르주아적 이성애 모델을 답습한 것으로, 동성애자 역시 착취적인 남/여 모델에 의해 왜곡되어 있다. 게다가 도덕적으로 금기시되는 동성애에 대한 죄의식이 이중의 굴레를 씌운다. 발렌틴은 <여성이 된다는 것은 순교자가 되는 것이 아니며, 남성이 된다는 것은 특별한 권리를 가지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더군다나 <성적 취향이 인간의 존엄성을 해칠 수 없음>을 주장하고 있다. 마르쿠제가 동성애자를 사회의 억압적 요소를 상기시켜주는 비판적 철학자에 비유하듯 우리는 몰리나를 통해 애처로운 환상을 그러나 아름다운 관계의 가능성을 본다.
라틴 아메리카 현대 소설은 60년대 이후 세계 현대 작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면서 상업적으로도 성공을 거두었으나, 국내에 관심을 불러일으키면서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초이다. 마르케스를 위시한 이들 <붐> 작가들은 지역성과 세계성을 적절히 융합하면서 현대인이 처한 상황을 다양한 서술 형식으로 접근하였다. 한편 1980-90년대에 전성기를 맞기 시작한 <포스트 붐> 세대는 <붐> 작가들이 읽기 어려운 난해한 소설을 추구하는 엘리트주의에 빠져 있으며 지나친 세계주의 성향으로 라틴 아메리카의 현실을 무시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소설 장르 자체에 문제를 제기하는 경향을 강하게 보여준다. 마누엘 푸익은 <포스트 붐>의 이러한 특징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 작가로서 작품성과 대중성을 고루 갖춘 작가로 주목받고 있다.
성과 정치
성의 억압을 푸익은 현대를 파악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삼고 있다. 그는 작품 속에서, 남성 우월주의와 남성성/여성성이라는 이분법적 성 이데올로기에 억눌린 인물들을 통해 성을 둘러싼 인류의 관습과 제도들을 문제화하고 있다. 푸익은 이러한 성적 억압이 할리우드식 영화나 멜로드라마가 최상의 가치인 양 제공하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고 있다고 비판한다. 푸익은 성에 있어서 음성적이고 터부시되는 모든 것을 탈신비화하기 위해 글을 쓴다고 말한다.
동성애자인 몰리나와 좌익 게릴라인 발렌틴이 이 소설의 주인공이다. 이들은 같은 감방에 수감되어 있고, 감옥 생활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몰리나가 자신이 관람했던 영화들을 발렌틴에게 들려주는데, 그러는 동안에 두 죄수 사이의 관계가 진전되어 간다. 처음에, 몰리나가 들려주는 영화는 이성적이고 정치적인 발렌틴에게는 비판의 대상일 뿐이다. 그가 보기에 이것은 부르주아 사회의 하찮은 대중문화의 일종이고 동시에 인간을 비정치적이 되도록 세뇌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이 진보적인 남성임을 자만하면서, 몰리나를 싸구려 감정에 매달리는 여자 같다고 경멸하던 발렌틴은 몰리나에게서 인간의 진정한 애정을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관계의 진전은 소설의 역동성을 마련해 주는데, 그 관계의 절정은 소설 후반에 이루어지는 두 인물간의 성애에서 완성된다.
인간적 합일이라는 구도를 통해 작가는 동성애를 하나의 성도착증으로 터부시해 온 기존 관념과, 여성과 남성을 여성성과 남성성의 대비로 가둬두는 성 이데올로기를 문제삼고 있다. 소설 처음에는 몰리나와 발렌틴이 각각 여성과 남성성을 대표하는 듯하지만, 두 사람 사이에 진정한 이해와 애정이 싹트고 결국 성적인 합일에까지 이르게 되면서 작가의 의도는 오히려 그러한 관념들의 허구성을 증명하는 데 있음을 알게 되는 것이다. 푸익은 이러한 의도를 뒷받침하기 위해 정신분석학자들의 성에 대한 이론과 반론들을 각주 형태로 제시하는데, 독자들은 각주로 나타난 학문적 텍스트와 인물 사이의 대화로 나타난 허구 텍스트를 계속적으로 대비하고 비교함으로써 능동적 역할을 증대시키게 된다.
영화와 문학
어린 시절 푸익은 자신에게 <영화란 현실을 대체할 수 있는 하나의 언어체계>였다고 회고한다. 엄마와 함께 관람한 영화를 회상하는 형식의 {리타 헤이워스의 배반}은 작가의 자전적인 소설이다. 조그만 마을에서 무료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보았던 영화들이 후에 그의 소설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게 된다. 시나리오 작가로 출발했던 푸익의 소설들은 영화를 빼놓고는 말할 수가 없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사건}은 왕자웨이 감독의 영화 [해피 투게더]의 원작으로도 널리 알려진 작품이다. 영화 「거미여인의 키스 The Kiss of the Spider Woman」에서는 영화 속의 영화가 몰리나에 의해 절묘하게 각색되어 보여진다.
영화의 역할은 이 소설에서 몰리나와 발렌틴의 관계 및 주제를 암시한다. 소설 속에 나오는 두번째 영화는 나치 치하의 프랑스가 무대이며 독일 정보장교 버너 대위와 카페에서 노래를 부르는 미모의 여가수 레니 사이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이다. 레지스탕스의 요구에 의해 버너에게 접근하는 레니, 그러나 레니는 버너를 사랑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조국인 프랑스를 위해서는 버너를 배반해야 하는 현실 사이에서 괴로워한다. 끝내 버너의 품에서 총에 맞아 죽는 레니. 사실 몰리나는, 수사반장의 계략으로 발렌틴과 같은 감방에 넣어졌는데, 그의 임무는 발렌틴 조직의 비밀을 알아내는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남자>를 그리워하는 호모인 몰리나의 눈에, 발렌틴이 이상적인 남자로 비치면서 어느덧 몰리나는 발렌틴을 사랑하게 된다. 현실 속에서 영화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몰리나와 레니가 동일시되며, 우리는 이 이야기를 통해 몰리나의 운명을 예견할 수 있다. 여기에 나오는 6편의 영화 이야기를 주제와 연결시켜보는 작업 또한 이 작품만의 또 다른 즐거움일 것이다.
[작가 소개]
저자 | 마누엘 푸익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북서쪽 헤네랄 비예가스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내고 1956년 이탈리아 협회의 장학금을 받아 로마의 치네치타 실험영화 센터에 입학하였다. 시나리오를 쓰지만 별 주목을 받지 못하여 소설을 쓰기 시작하였다. 따라서 자연히 영화와 문학 작품을 연결시키는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의 첫 소설 「리타 헤이워스의 배반(La traicio on de Rita Hayworth)」(1958)은 나오자 마자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프랑스 「르몽드」지의 최고의 소설로 선정되었다. 두번째 소설 「화장한 입술 Boquitas Pintadas」(1969) 역시 고국에서는 금기시되었으나 외국 비평가들에게 극찬을 받았다. 특히 「부에노스 아이레스 사건(The Buenos Aires Affair)」(1973)은 페론을 패러디한 것으로 에바 페론의 암살 리스트에 오른다. 가장 대표적 작품은 「거미여인의 키스(El Beso de la Mujer Arana)」(1976)이며 그 외에 「천사의 음부(Pubis Angelical)」(1979) 「이 책을 읽는 자에게 영원한 저주를(Maldicci oneterna a quien lea Paginas)」(1980) 「보답받은 사랑의 피(Sangre de AmorCorrespondido)」(1982) 「열대의 밤이 질 때(Cae la Noche Tropical)」(1988) 등이 있다. [북토피아 제공]
작가의 통합검색 결과보기
[목차]
1부
제1장
제2장
제3장
제4장
제5장
제6장
제7장
제8장
2부
제9장
제10장
제11장
제12장
제13장
제14장
제15장
제16장
작품 해설/송병선
작가 연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