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월의 마지막 날, 아침 운동을 끝내고 샤워를 하는 도중
갑자기 용유도의 할리스가 뇌리에 스팟되었습니다.
부랴부랴 노트북과 그날 읽어야 할 책들을 백팩에 담고 길을 나섰습니다.
용유도로 가는 길은 내비게이션이 없던 시절
온전히 육감에 의존해 만들어둔 저만의 루트가 있는데
이상하게도 그 길은 현재 어떤 경로로 확인해봐도 내비게이션에 뜨지 않습니다.
그 길을 이용하면 일산에서 출발해 평균 40분 경과 후
눈앞에 펼쳐진 시원스런 바다 풍경을 마주하게 됩니다.
내비게이션의 안내를 따라가게 되면 인천공항 주변길을 돌고돌아
한 시간 반 정도 뒤에나 목적지에 당도하게 됩니다.
주말에는 사람이 너무 몰려 용유도 방면으로 갈 엄두를 내지 못하는데
수요일이라 제법 한갓진 분위기를 만끽하며 할리스에서 작업할 수 있었습니다.
전국에 커피숍이 많다 하지만 이렇게 바다와 인접해 만들어진 커피숍이라니!
언제 기회가 되면 저 비치파라솔 밑에 앉아 조용히 인생을 조망하시기 바랍니다.
* 그날 할리스에서 읽은 인상적인 시 한 편 :
바다 옆의 방
이운진
햇살은 사각형으로 눈부시다
그 곁에서 젊음과 닮았던 바다는 조그맣게 푸르다
어쩌면 이것은 망각에 관한 것인지도 모른다
빛과 구름과 물결은 한순간도 바뀌지 않고
그저께였고 어제였고 조금 전이었던
시간은 오지 않고 가지 않는다
나쁜 것은 모두 나였다고 자책할 때
눈 뜨지 못하도록 햇살은 반짝이고
햇빛을 빨아들이는 벽은 튼튼하다
아무도, 그 누구를 위해서도
울지 않을 때까지
바다만 시리게 바라보는 곳
마른 꽃도
줄 끊어진 기타도
꿈속에서나 나에게 돌아오던 한 사람도 없는 곳
어쩌면 이곳은
천천히 그리고 아름답게
너를 잃기 위해 만든 방인지도 모른다
견뎌야 할 기억이 남아 있어
내가 간다면
그 빈 방으로 가는 것이다
* <바다 옆의 방> :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 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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