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에 모임이 있어 종로에 나갔습니다.
모임이 다 끝나고 일행과 헤어진 뒤
혼자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등을 기다리다가
대각선 맞은편의 낡고 불 꺼진 건물을 올려다보았습니다.
3층 건물 1,2층은 모두 불이 꺼졌는데
단 하나, 3층의 한 창에서만 불빛이 밀려나오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아주 기이하고 이상한 부름이 뇌리로 날아들어
알 수 없는 인력에 이끌리듯 횡당보도를 건너고
불이 꺼진 건물 계단을 올라 3층까지 갔습니다.
그리고 손님이 하나도 없고, 스탠드 안에 두 명의 남자만 서 있는 기이한 카페
통유리 옆자리에 앉아 망연히 아래를 내려다보며
버드와이저 한 병을 마시고 그곳을 떠났습니다.
며칠이 지난 오늘 저 사진을 휴대폰에서 열어보며
그날 그 순간 나를 저곳으로 이끈 부름의 정체가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저 자리에 앉아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되새겨보다 불현듯 '일본'이라는 화두를 얻었습니다.
저 창과 연관된 이미지, 그리고 일본…
아슴아슴하게 되살아나는 장면들을 하나하나 이어나가며
30년 전의 도쿄 밤거리, 그리고 신주쿠
도처에서 들려오는 왁자한 웃음소리를 되살려냈습니다.
그 모든 것들이 저 창의 이미지 하나에 맺힘으로써
중첩된 시공간들이 무의식적으로 되살아나 파동을 일으키고
저는 그것에 이끌려 기계적으로 어두운 빌딩 속으로 걸어들어간 것이었습니다.
모든 것들이 양자적으로 연결된 우주의 시공간,
불현듯 소름이 돋으면서도 재미있는 만화경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