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고독이 다가와 문득 말을 걸 때가 있다. 깊은 밤 혼자 라면을 끓여먹을 때, 새벽에 잠에서 깨어 유리처럼 맑은 정신이 느껴질 때, 길을 걷다가 문득 자신이 유리 동물원에 갇혀 있는 것 같다는 착각이 들 때, 바다 앞에 서서 우주의 기슭에 혼자 서 있는 자신을 자각할 때,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자신이 떠나온 별을 찾고 싶어질 때…… 고독은 소리 없이 찾아와 은밀하게 인간의 어깨를 건드린다. 돌아보면 아주 익숙한 표정으로 낯설게 말을 건다. 그것이 고독의 화법이기 때문이다.
―이봐, 왜 그렇게 울상을 짓고 있지?
―묻지 마. 나는 지금 고독해.
―그건 고독한 게 아냐. 고독하다는 말 함부로 하지 마.
―그럼 내가 무엇 때문에 이렇게 힘든 거지?
―고독하지 못하기 때문이지. 정말 고독하다면 그렇게 울상을 짓고 있진 않을 거야.
―고독하다는 게 뭔데?
―그건 잘 여문 과일 씨앗처럼 단단하고 핵심적인 것이지.
―그런 걸 어떻게 느껴?
―고독과 동거하면 돼. 항상 느끼고, 항상 같이 사는 거야.
―그럼 뭐가 되는데?
―고독과 자신과 하나가 되지. 고독과 하나가 돼야 비로소 온전한 인간이 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