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놀러 가는 일’과 동일시하는 사람이 많다. 실제로 일 년 내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관광버스의 행렬도 대개 유람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유람이란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구경을 하는 것이니 본격적인 여행보다는 단체 견학의 성격이 강하다. 관광(觀光)이란 한자나 sight seeing이라는 영어 단어도 역시 풍광을 본다는 의미라 유람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요컨대 여행의 대상을 풍경과 외부 세계에 국한시키면 고작해야 ‘카메라 여행’밖에 되지 않는다.
여행은 ‘안’을 벗어나 ‘밖’으로 나가는 행위이다. 하지만 ‘밖’으로 나가 궁극적으로 도달하고자 하는 목적지는 역시 ‘안’이다. 삶의 터전으로서의 ‘안’이 아니라 정신적 근원으로서의 ‘안’이다. ‘밖’으로 나가 ‘밖’으로만 떠돌다 돌아온 사람에게 ‘안’은 지옥 같은 권태와 타성의 지옥으로 비친다. 그래서 진정한 내적 성찰이 이루어지지 않는 여행은 후유증과 부적응을 낳고 또다른 일상탈출을 불러온다. 여행이 아니라 습관적 현실 도피증을 낳게 되는 것이다.
진정한 여행은 외부세계를 통해 내부세계를 지향한다. 생동감을 잃거나 타성에 빠진 삶의 터전에서 벗어나 본래의 자아를 회복하고 자신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얻고자 한다면 여행을 놀이의 기회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여행은 자신을 상실하는 기회이고, 상실을 통해 재생의 기회를 얻는 과정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