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우 고간

나에게 날리는 하이!

레무리안2016-03-22

겨울부터 봄까지 『외계인』이라는 장편소설을 쓰면서 오전 열 시경부터 오후 네 시경까지 '설빙'이라는 디저트 카페에서 꽤 여러 날 작업을 했습니다. 그 카페는 이층에 있는데, 오후 네 시경 그곳을 나와 일층으로 내려올 때마다 이층 창유리에 붙어 있는 상호 중 '하이'라는 글자가 오후의 잔광을 받아 일층 벽면에 그림자를 만들곤 했습니다. 그래서 소설을 끝내고 내려오는 마지막 날, 저 하이를 향하여 기분 좋은 하이를 날려주리라 작정했습니다. 나에게 날리는 하이, 드디어 그날을 맞이하여 기분 좋은 브이를 ...

내게 너무 조화로운 사각보

레무리안2016-03-16

인사동에서 오천원을 주고 산 사각보입니다. 가운데 자리잡은 조각문양이 참 조화롭게 어우러져 서재를 오가며 자주 시선을 빼앗기곤 합니다. 커피 한 잔 가격으로 마음의 균형을 찾게 해주는 무언가를 만든다는 것, '솜씨'는 가격매김을 할 수 없는 무형의 가치라는 생각이 듭니다. 솜씨 좋은 사람이 되어 많은 사람에게 솜씨를 베푸는 인생, 솜씨 중 최고의 솜씨는 무엇보다 마음 솜씨, 다시 말해 나보다 남을 먼저 배려하는 솜씨일 것입니다. 솜씨 좋은 사각보를 보며 마음 솜씨를 생각하는 화창한 오후입니다. Click on the...

토요일, 인사동 산책

레무리안2016-03-13

토요일 오후, 오랜만에 인사동 산책을 했습니다. 사실은 작은 사각보를 하나 살 요량이었는데 그것이 잘 눈에 띄지 않아 아주 천천히 좌우의 기념품 판매점들을 살피며 걸었습니다. 인사동에는 사람의 마음 형상을 닮은 물건들이 참 많습니다. 골동품, 민화, 고전적인 장신구 등등을 느긋하게 구경하며 걷다가 길 한가운데서 경쾌한 풍물놀이패를 만났습니다. 봄을 부르는 듯한 타악기 소리가 너무 흥겨워서 인사동이 아니라 시골집 너른 마당 한 가운데 서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아무튼 이제는 누가 뭐래도 봄입니다, 완연한 봄...

Memories of Audrey Hepburn

레무리안2016-03-04

수요일 밤, 청담동에서 저녁 약속이 있어 외출했습니다. 일식집에서 식사를 하고 편안한 술집으로 자리를 옮겨 소주를 마셨습니다. 참나무통에서 10년 숙성시켰다는 소주를 두 병 마시는 동안 몇 차례 화장실을 다녀오며 어김없이 화장실 앞의 벽면에 걸린 오드리 헵번의 대형 패널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망연자실한 기분, 언어로 형언할 수 없는 감성의 스펙트럼 때문에 세월과 기억과 정서가 고스란히 휘발되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며칠이 지난 뒤 휴대폰 갤러리에 저장된 그녀를 발견하고 포토샵에 얹어 이 지구상의 어디에...

춘설이 난분분하니

레무리안2016-03-01

일요일, 오전부터 기습적인 폭설이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겨울 내내 눈다운 눈이 내리지 않더니 봄꽃이 움트는 걸 시샘하는 것처럼 젖은 눈을 쏟아부어 나뭇가지마다 적설을 이루고, 기온이 떨어지니 그것이 설화(雪花)가 되었습니다. 평양기생 매화(梅花)의 시조가 떠오른 것도 다 춘설(春雪) 때문이려니 앞에 앉은 민트와 뒤에 앉은 나는 망연히 눈 내리는 풍경에 동화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매화 옛등걸에 봄철이 돌아오니 예전 피던 가지에 피엄즉도 하다마는 춘설이 난분분하니 필동말동하여라 Click on the photo!

자정 무렵, 나는 자유다

레무리안2016-02-26

100매 가까운 연재소설 원고를 끝내고 토요일 강의준비도 끝내고 한 주 내내 집중하던 일들로부터 풀려나는 자정 무렵, 곤두선 신경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와인을 마시며 그리그의 피아노협주곡을 듣습니다. 긴장과 초조와 집중으로 점철되었던 의식의 결기들이 해체되어 밤의 드넓은 대공으로 빨려들어가는 게 녹록하게 느껴집니다. 산다는 것은 노동과 휴식, 긴장과 이완의 되풀이 떠남과 돌아옴, 만남과 헤어짐의 되풀이 희망과 절망, 비상과 추락의 되풀이 잠듦과 깨어남, 태어남과 죽음의 되풀이 그리고 그 모든 되풀이의 되풀이라는...

2월에 만난 봄

레무리안2016-02-26

오늘 오전에는 정말 많은 일을 했습니다. 연재소설 원고가 아직 안 끝났는데도 여유를 잃지 않고^^ 헬스클럽에 가서 운동, 사우나 하고, 아침식사하고, 차에 기름 넣고, 세차하고, 마트에 들러 작업 중에 섭취할 가벼운 먹거리 몇 가지 사고 돌아오는 길에 문득 마음이 당겨 화훼마트에 들렀습니다. 아직 2월인데, 그곳에는 온갖 봄꽃과 녹색식물이 자태를 한껏 뽐내고 있었습니다. 싱그러움을 마음껏 호흡하고 돌아왔으니 이제 다시 작업을 시작, 오늘 중에는 반드시 연재소설 원고를 마무리해야겠습니다. 밝고, 화창하고, 상쾌한 정오무...

혼자, 조용히, 멀리

레무리안2016-02-25

연재소설 마감이 지났는데 아직 넘기지 못하고 있습니다. 장소를 두 군데나 옮겨가며 막바지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오늘과 내일 전력질주하면 끝날 듯도 하지만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므로 섣부른 예단은 금물. 이런 와중에도 머릿속에는 여행에 대한 생각이 가득합니다. 지난 겨울에는 해마다 가던 백두대간 겨울 산행도 하지 못했습니다. 오랜 기간 부둥켜안고 있던 장편을 끝내자마자 새로운 연재를 시작하고 차일피일 여행을 미루며 견디다 한계에 부딪힌 느낌입니다. 그리하여 소설을 쓰는 와중에도 염불처럼 머릿속에서 ...

사발커피가 있는 풍경

레무리안2016-02-17

오랜만에 카페에 와서 작업합니다. 사발커피라는 네이밍에서 친근감이 느껴지는 공간입니다. 반년 이상 청송 객주문학관의 창작관에서 작업하다가 도시의 공중공간 유리벽 앞에 앉아 작업하자니 청송에 비해 집중력이 떨어지는 게 확연히 느껴집니다. 하지만 인간만사가 좋은 여건에서만 이루어질 리 없으니 이런 기회를 자기 집중과 연마의 시간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인간의 오감이 너무 좋은 것에만 길들여진다는 것, 그것도 분명 장애라는 생각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기회가 되면 집에서 투박한 사발에 커피를 담아 마셔봐야...

인동 사색

레무리안2016-02-16

겨울나기라는 말과 인동(忍冬)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둘 다 겨울을 견뎌내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생명을 지닌 모든 것들에게 겨울은 의미심장합니다. 겨울잠을 자는 짐승들이 있는가 하면 나무나 식물은 죽음과 같은 형상으로 헐벗고 탈색한 몰골로 겨울을 납니다. 생명은 봄으로부터 시작되어 여름에 절정을 이루고 가을에 결실하는 것으로 한 사이클을 완성합니다. 겨울은 새로운 생명을 위한 준비기간으로 깊은 숙면상태를 유지합니다. 자연의 그와 같은 이치로부터 인간의 생명도 같은 이치임을 발견하게 됩니다. '태어났다'...

백두대간 선자령 창공

레무리안2016-02-05

오늘, 필요한 이미지를 찾느라 사진 파일을 검색하다가 2010년 2월 24일 12시 02분에 촬영된 사진을 발견했습니다. 6년 전 그날 눈 덮인 백두대간 선자령을 등정하다가 짙푸른 겨울 창공에서 연습 비행을 하는 전투기 두 대를 목격했습니다. 두 대의 전투기가 아슬아슬하게 스쳐가며 남긴 자취를 올려다보며 사진 몇 장을 찍었는데 그로부터 일주일쯤 뒤 9시 뉴스 시간에 대관령 인근 선자령 상공에서 연습비행을 하던 강릉 전투비행단 소속 F5 전투기 두 대가 추락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한동안 망연자실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내가 찍...

민트의 오전

레무리안2016-02-02

햇살 좋은 아침마다 민트는 저렇게 창밖을 관망합니다. 집안을 생명의 행성으로 삼고 살아가는 민트로서는 바깥이 외계일 수밖에 없습니다. 고즈넉하게 앉아 하염없이 바깥을 내다보는 그 자세에서 동물을 넘어서는 견성(見性)이 엿보여 이상하게 가슴이 뭉클해지곤 합니다. 민트의 뒤쪽 테이블에 앉아 나는 책을 읽습니다. 조용한 화요일 오전입니다. Click on the photo!

그리움의 간격

레무리안2016-01-29

밤 사이 청송에 눈이 내렸습니다. 눈이 내리는 밤에 먼 곳으로 갔다가 돌아오는 길, 창작관 뒤편의 가로등을 사이에 두고 두 그루의 나무가 사이좋게 눈을 맞고 있었습니다. 그 나무들 사이의 거리가 마치 그리움의 간격처럼 보여서 휴대폰을 꺼내 한 장 찍어보았습니다. 오늘 눈길을 기듯 운전을 해서 먼 곳에 있는 집으로 돌아갈 일이 까마득합니다. Click on the photo!

빙하지대

레무리안2016-01-24

2016년 1월 13일, 청송 얼음골 Click on the photo!

성에꽃

레무리안2016-01-20

청송 객주문학관, 아침에 주차장에 나가 차에 올라보니 프런트글래스에 이런 성에꽃이 피어 있었습니다 성에 뒤쪽의 실루엣 같은 풍경이 아름다워 휴대폰으로 한 장 찍었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 시동을 거니 무반응! 영하 14도의 혹한에 배터리가 완전 방전되어 버린 것이었습니다. 혹한은 아름다운 성에꽃도 피우지만 움직임을 멈추게 하는 위세도 과시합니다. Click on the pho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