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우 고간

자정 무렵, 나는 자유다

레무리안2016-02-26

100매 가까운 연재소설 원고를 끝내고 토요일 강의준비도 끝내고 한 주 내내 집중하던 일들로부터 풀려나는 자정 무렵, 곤두선 신경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와인을 마시며 그리그의 피아노협주곡을 듣습니다. 긴장과 초조와 집중으로 점철되었던 의식의 결기들이 해체되어 밤의 드넓은 대공으로 빨려들어가는 게 녹록하게 느껴집니다. 산다는 것은 노동과 휴식, 긴장과 이완의 되풀이 떠남과 돌아옴, 만남과 헤어짐의 되풀이 희망과 절망, 비상과 추락의 되풀이 잠듦과 깨어남, 태어남과 죽음의 되풀이 그리고 그 모든 되풀이의 되풀이라는...

2월에 만난 봄

레무리안2016-02-26

오늘 오전에는 정말 많은 일을 했습니다. 연재소설 원고가 아직 안 끝났는데도 여유를 잃지 않고^^ 헬스클럽에 가서 운동, 사우나 하고, 아침식사하고, 차에 기름 넣고, 세차하고, 마트에 들러 작업 중에 섭취할 가벼운 먹거리 몇 가지 사고 돌아오는 길에 문득 마음이 당겨 화훼마트에 들렀습니다. 아직 2월인데, 그곳에는 온갖 봄꽃과 녹색식물이 자태를 한껏 뽐내고 있었습니다. 싱그러움을 마음껏 호흡하고 돌아왔으니 이제 다시 작업을 시작, 오늘 중에는 반드시 연재소설 원고를 마무리해야겠습니다. 밝고, 화창하고, 상쾌한 정오무...

혼자, 조용히, 멀리

레무리안2016-02-25

연재소설 마감이 지났는데 아직 넘기지 못하고 있습니다. 장소를 두 군데나 옮겨가며 막바지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오늘과 내일 전력질주하면 끝날 듯도 하지만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므로 섣부른 예단은 금물. 이런 와중에도 머릿속에는 여행에 대한 생각이 가득합니다. 지난 겨울에는 해마다 가던 백두대간 겨울 산행도 하지 못했습니다. 오랜 기간 부둥켜안고 있던 장편을 끝내자마자 새로운 연재를 시작하고 차일피일 여행을 미루며 견디다 한계에 부딪힌 느낌입니다. 그리하여 소설을 쓰는 와중에도 염불처럼 머릿속에서 ...

사발커피가 있는 풍경

레무리안2016-02-17

오랜만에 카페에 와서 작업합니다. 사발커피라는 네이밍에서 친근감이 느껴지는 공간입니다. 반년 이상 청송 객주문학관의 창작관에서 작업하다가 도시의 공중공간 유리벽 앞에 앉아 작업하자니 청송에 비해 집중력이 떨어지는 게 확연히 느껴집니다. 하지만 인간만사가 좋은 여건에서만 이루어질 리 없으니 이런 기회를 자기 집중과 연마의 시간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인간의 오감이 너무 좋은 것에만 길들여진다는 것, 그것도 분명 장애라는 생각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기회가 되면 집에서 투박한 사발에 커피를 담아 마셔봐야...

인동 사색

레무리안2016-02-16

겨울나기라는 말과 인동(忍冬)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둘 다 겨울을 견뎌내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생명을 지닌 모든 것들에게 겨울은 의미심장합니다. 겨울잠을 자는 짐승들이 있는가 하면 나무나 식물은 죽음과 같은 형상으로 헐벗고 탈색한 몰골로 겨울을 납니다. 생명은 봄으로부터 시작되어 여름에 절정을 이루고 가을에 결실하는 것으로 한 사이클을 완성합니다. 겨울은 새로운 생명을 위한 준비기간으로 깊은 숙면상태를 유지합니다. 자연의 그와 같은 이치로부터 인간의 생명도 같은 이치임을 발견하게 됩니다. '태어났다'...

백두대간 선자령 창공

레무리안2016-02-05

오늘, 필요한 이미지를 찾느라 사진 파일을 검색하다가 2010년 2월 24일 12시 02분에 촬영된 사진을 발견했습니다. 6년 전 그날 눈 덮인 백두대간 선자령을 등정하다가 짙푸른 겨울 창공에서 연습 비행을 하는 전투기 두 대를 목격했습니다. 두 대의 전투기가 아슬아슬하게 스쳐가며 남긴 자취를 올려다보며 사진 몇 장을 찍었는데 그로부터 일주일쯤 뒤 9시 뉴스 시간에 대관령 인근 선자령 상공에서 연습비행을 하던 강릉 전투비행단 소속 F5 전투기 두 대가 추락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한동안 망연자실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내가 찍...

민트의 오전

레무리안2016-02-02

햇살 좋은 아침마다 민트는 저렇게 창밖을 관망합니다. 집안을 생명의 행성으로 삼고 살아가는 민트로서는 바깥이 외계일 수밖에 없습니다. 고즈넉하게 앉아 하염없이 바깥을 내다보는 그 자세에서 동물을 넘어서는 견성(見性)이 엿보여 이상하게 가슴이 뭉클해지곤 합니다. 민트의 뒤쪽 테이블에 앉아 나는 책을 읽습니다. 조용한 화요일 오전입니다. Click on the photo!

그리움의 간격

레무리안2016-01-29

밤 사이 청송에 눈이 내렸습니다. 눈이 내리는 밤에 먼 곳으로 갔다가 돌아오는 길, 창작관 뒤편의 가로등을 사이에 두고 두 그루의 나무가 사이좋게 눈을 맞고 있었습니다. 그 나무들 사이의 거리가 마치 그리움의 간격처럼 보여서 휴대폰을 꺼내 한 장 찍어보았습니다. 오늘 눈길을 기듯 운전을 해서 먼 곳에 있는 집으로 돌아갈 일이 까마득합니다. Click on the photo!

빙하지대

레무리안2016-01-24

2016년 1월 13일, 청송 얼음골 Click on the photo!

성에꽃

레무리안2016-01-20

청송 객주문학관, 아침에 주차장에 나가 차에 올라보니 프런트글래스에 이런 성에꽃이 피어 있었습니다 성에 뒤쪽의 실루엣 같은 풍경이 아름다워 휴대폰으로 한 장 찍었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 시동을 거니 무반응! 영하 14도의 혹한에 배터리가 완전 방전되어 버린 것이었습니다. 혹한은 아름다운 성에꽃도 피우지만 움직임을 멈추게 하는 위세도 과시합니다. Click on the photo!

동해 인상

레무리안2016-01-14

몇몇 작가들과 모처럼 동해 나들이를 했습니다. 청송 객주문학관에서 영덕 강구항까지 한 시간 소요. 회와 대게를 먹고 짙푸른 겨울바다와 하늘을 응시하며 커피를 마셨습니다. 동해는 한 점의 파도도 일으키지 않아 푸른 해원 그 자체였습니다. 바다를 어떻게 보는가, 나에게 자문하는 기분으로 사진 몇 장을 찍었습니다. 정확하게 지금 내가 보는 바다가 고스란히 폰에 담겨 나타났습니다. 극도로 단조롭고 단순한 바다, 이유도 없고 설명도 없는 바다. 오늘은 그런 바다를 보고 돌아와 기분이 담담합니다. 어두워지는 저녁무렵, 마음에...

청송 얼음골

레무리안2016-01-13

어제 청송은 영하 14도를 기록했습니다. 16, 17 양일간 UIAA 아이스클라이밍 월드컵 개최에 맞춰 기온이 급강하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은 바람이 몹시 심하게 불었지만 빙벽을 보러 객주문학관 창작관을 떠나 얼음골까지 한 시간 정도 달려 장관을 감상하고 왔습니다. 16-35 광각렌즈를 달고 갔지만 현장 여건상 빙벽의 전모를 담기는 어려웠습니다. 위 사진은 삼성 갤럭시 S6엣지 플러스로 찍은 것이라 시야각이 더 줄었습니다. 하지만 혹한의 날씨에 저토록 쨍한 빙벽과 창공을 보고나니 가슴에 얼음골이 똟린 것처럼 기...

이상한 아침의 철새

레무리안2016-01-12

사이월드 개편으로 오랫동안 많은 삶의 기록을 저장해 온 블로그를 버리고 새로운 홈피를 만들었습니다. 많은 것들이 변하는 시절입니다. 새로운 홈피의 컵셉은 '극도의 단순성'. 홈피 대문 사진을 고르다가 언뜻 2009년 1월 10일 천수만 간월도에서 찍은 철새들이 눈에 잡혔습니다. 전생에 찍은 사진을 보는 것처럼 모든 것이 아득합니다. 철새 사진을 고르고나자 언젠가 내가 쓴 철새에 관한 글이 기억났습니다. 결국 2003년 10월 20일에 출간된 책을 찾아내고 기억을 자극한 글이 수록된 페이지를 찾아냈습니다. 아마도 그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