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우 고간

호수공원 벚꽃 엔딩

레무리안2023-04-06

월요일에 호수공원 벚꽃 절정을 보고 왔는데 연이틀 비가 내리더니 예상대로 이른 벚꽃 엔딩이 왔습니다. 새벽에도 비가 오락가락했지만 그래도 머릿속에 연상되는 그림이 있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카메라를 챙겨 호수공원으로 갔습니다. 예상대로 눈 내린 아침을 방불케 하는 장엄한 엔딩 장면. 바야흐로 녹음방초의 계절이 도래할 것이니 벚꽃 엔딩이 진정한 성하의 계절을 알리는 전령사처럼 여겨졌습니다. 봄을 지나 여름으로 가는 길목입니다.

호수공원 벚꽃 절정

레무리안2023-04-04

4월 3일 아침 일찍 호수공원으로 벚꽃을 보러 갔습니다. 2020년 4월 7일 이 게시판에 <호수공원 벚꽃엔딩>을 올렸으니 그 사이 3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다시 동일한 장소에서 벚꽃을 만나고 그것 자체에 빠져 세월의 흐름을 망각할 수 있었습니다. 해마다 피고지는 꽃을 보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으로 상춘객들이 몰리는 이유가 실제로 꽃 때문이 아니라 꽃을 빙자해 다시 한번 마음을 피워보기 위한 인간들의 내밀한 욕망을 반영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며 벚꽃을 보았습니다. 아무려나 일년에 한번 마음을 피워볼 기회를 갖는...

보산동에서 로스앤젤레스까지 9,554km

레무리안2023-04-01

유년시절에 살던 곳을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에 지근거리에 동두천이 있음을 알고 찾아갔는데 그곳의 보산동이 관광특구가 되었다는 걸 처음 알게 됐습니다. 대학시절부터 즐겨 읽던 김명인 시인의 동두천 연작시들이 떠올랐고 거기 등장하는 보산리가 보산동이 되고 관광특구가 되었다는 걸 알았습니다. 슬픔과 애환으로 점철된 기지촌 역사가 이제 관광특구가 되었다기에 차를 세우고 천천히 걸으며 일대를 둘러보았습니다. 관광특구임에도 사람이 별로 보이지 않고 관광특구라고 할 만한 것이 별로 보이지 않아 기지촌 역사 자체를 관광...

중첩된 세계, 기억의 재구성

레무리안2023-03-29

3월 28일, 원래 무의도 섬을 한바퀴 도는 트레킹을 계획하고 있었는데 이런저런 일들을 처리하다 시간을 놓쳐 트레킹은 다음으로 미루고 작년부터 별러오던 제 유년의 뜨락을 찾아가보기로 작정하였습니다. 작년에 어떤 출판사의 청탁으로 '꼬마 미야를 찾아서'라는 글을 썼는데 제가 다섯 살 때 만나 여섯 살까지 함께 놀던 여자아이에 관한 글이었습니다. 글을 쓸 때만 해도 제 기억 속의 그 공간이 다른 우주처럼 까마득하게 느껴졌는데 나중에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현재 제가 살고 있는 곳으로부터 고작 한 시간 정도의 거리...

정신줄 놓으면 일어나는 일

레무리안2023-03-22

3월 17일, 노트북과 자료를 챙겨 용유도로 갔습니다. 용유도 할리스에서 작업을 할 작정이었는데 그 사이 할리스가 사라지고 디저트 카페가 생긴 걸 확인했습니다. 같은 땅, 같은 건물이고 단지 실내 인테리어가 바뀌었을 뿐인데 이상하게도 집중이 되지 않아 두 시간만에 철수했습니다. 그곳을 떠나는 길에 식당촌이 있는 곳으로 가 모처럼 내가 좋아하는 영양굴밥을 먹고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공용 주차장에 차를 대고 한 식당을 골라 들어갔습니다. 맛있고 정갈한 반찬으로 식사를 하고 나와 집으로 돌아왔는데 다음날 오전에야 내가 ...

마장 축산물 시장

레무리안2023-03-10

어제 볼일을 보고 우연찮게 마장 축산물 시장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소설에서나 읽던 바로 그곳을 난생처럼 방문하게 되어 신기한 기분으로 주변을 관찰하고 사진을 몇 장 찍었습니다. 서울 시내 전체 육류의 60% 이상을 이곳에서 수급하고 주변에 정육식당들이 들어서 찾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일행과 저녁 식사를 하고 돌아나올 때는 재래시장 전체가 문을 닫아 썰렁했는데 시장은 보통 새벽 4시에 열리고 저녁 7시에 파장한다고 합니다. 식사를 하고 주변의 어두운 골목을 한바퀴 도는 동안 한국이나 홍콩의 폭력물 영화에 나올...

봄이 오는 풍경

레무리안2023-03-03

3월 3일, 아침 일찍 집을 나서 차를 몰고 오대산으로 달렸습니다. 세 시간 반을 달려 월정사 전나무 숲길과 선재길을 걷고 다시 세 시간 반을 달려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몇 시간 동안의 트레킹과 왕복 7시간의 운전에도 불구하고 심신이 맑게 정화된 기분이 들어 별다른 피로가 느껴지지 않습니다. 제가 세운 당일 운전의 최고 기록은 16시간인데 오늘의 7시간은 그것에 비하면 가벼운 것일 수 있습니다. 피로보다 달리는 동안 스트레스가 휘발되는 게 확연하게 느껴져 이런 식의 달리는 여행을 다녀온 뒤에 속도위반 과태료 고지서가 ...

연남동, 파동함수 붕괴

레무리안2023-02-24

오랜만에 모임이 있어 연남동으로 나갔습니다. 언제 이곳에 마지막으로 왔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습니다.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 위해 한 시간 반 정도 먼저 나가 연트럴파크라고 불리는 곳을 두어 번 오르내리고 할리스에서 아메리카노를 한 잔 마시며 연남동에서 보내는 낯선 시간과 공간의 정체를 생각해보았습니다. 모임 약속이 없을 때, 과연 연남동이 존재하고 있었나, 이른바 파동함수가 유지되는 상태를 생각해보았습니다. 오늘 내가 발을 들여놓을 때 비로소 나의 관찰권에서 재생되는 시공간, 그곳에 앉아 있는 나도 파동함수가...

프로방스의 밤

레무리안2023-02-19

2월 2일 오후에 프로방스를 방문한 이후 겨울이 가기 전에 밤의 프로방스를 보러 가야겠다고 은근히 마음을 다독이다 2월 19일 일요일 해질 무렵 집을 나섰습니다. 지난번 주간 방문 때 작업에 필요한 사진 몇 컷을 건져서인지 밤의 방문에도 나름 기대감이 고조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일요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곳은 너무나 썰렁했고 절약형으로 장식한 빛축제 전구들만 안쓰럽게 빛을 발하고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제가 필요로 하는 사진작업의 여건도 여의치 않아 지난번 주간 방문 때와는 다르게 싱거운 출사가 되고 말았습니...

프로방스의 오후

레무리안2023-02-03

2월 1일 밤, 그리고 2월 2일 새벽에 프로방스가 뇌리에 꽂혀 2월 2일 오후에 차를 몰고 그곳으로 갔습니다. 프랑스의 프로방스가 아니라 그것을 모방한 파주의 쁘띠 프로방스, 제가 가끔 머리 식히고 싶을 때 카메라를 들고 가는 곳입니다. 겨울이라 사람이 별로 없고 썰렁할 뿐만 아니라 한때의 번성이 지나간 뒤의 퇴락한 분위기가 혼자 간 사람에게는 커피맛을 당기게 하는 잠잠한 풍광을 제공합니다. 몇 시간 혼자 시간을 보내며 카메라와 사진, 그리고 그것들이 연출하는 제 인생의 또다른 영역에 대해 2월 2일 오후는 명징하고 가슴...

설날, 민트에 대하여

레무리안2023-01-23

설날 밤, 부산에서 교수로 재직 중인 후배가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일가친족들이 집에 모여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자신은 담배를 피우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고 했습니다. 술을 마시는 중인 듯하여 몇 마디 덕담을 나누고 전화를 끊었는데 후배는 곧이어 다시 전화를 걸어와 느닷없이 민트에 관한 소식을 물었습니다. 후배도 고양이 두 마리를 키우다가 한 놈은 하늘나라로 보내고 다른 한 놈은 극심한 고양이 알레르기로 인해 딴 집으로 보냈다며 그 놈들 생각으로 문득 제가 기르는 민트 생각이 났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민트 사진...

현자들의 숲에서

레무리안2023-01-15

일요일인데 아침부터 현자들의 숲속으로 걸어들어갔습니다. 세상만사 우주만물 핵심 부분의 요지를 한자리에서 접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이라고 말하는 순간 그것이 되지 않는 신비, 차라리 그냥 그대로 머무는 것이 상책이 되는 가르침, 그것이 그것이라는 것을 말하지 않고 그것이 이미 완성형임을 자각하고, 자각하는 의식 자체도 자각할 필요가 없는 경지에 대하여 현자들은 똑같은 말을 자신만의 화법으로 돌아가며 들려주었습니다. 그것이 그것이니 그것이 그것이라고 말할 필요도 없는 그것에 대하여! 빈 하늘처럼 그것은 어떤 경...

내용 없는 아름다움에 대하여

레무리안2023-01-13

나는 지금도 김종삼 시집 『북치는 소년』의 초판을 소장하고 있다. 1979년 5월에 발간된 것이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종이는 누렇게 바래고 시인은 세상을 떠났다. 시집이 발간되던 1979년에 나는 대학 3학년이었다. 대학시절 시를 쓰던 나에게 김종삼 시집의 발견은 참으로 크나큰 위안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왜 위안이었는지를 나는 지금도 설명하지 못한다. ‘내용 없는 아름다움’이 있는 것처럼 ‘이유 없는 이끌림’도 있는 것이다. 나는 그의 시집을 항상 가방에 넣고 다녔고, 시간이 날 때마다 시집을 꺼내...

어떤 부름에 대하여

레무리안2023-01-06

연초에 모임이 있어 종로에 나갔습니다. 모임이 다 끝나고 일행과 헤어진 뒤 혼자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등을 기다리다가 대각선 맞은편의 낡고 불 꺼진 건물을 올려다보았습니다. 3층 건물 1,2층은 모두 불이 꺼졌는데 단 하나, 3층의 한 창에서만 불빛이 밀려나오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아주 기이하고 이상한 부름이 뇌리로 날아들어 알 수 없는 인력에 이끌리듯 횡당보도를 건너고 불이 꺼진 건물 계단을 올라 3층까지 갔습니다. 그리고 손님이 하나도 없고, 스탠드 안에 두 명의 남자만 서 있는 기이한 카페 통유리 옆자리에 앉아 ...

2022년의 마지막 일몰

레무리안2022-12-31

2022년의 마지막 일몰을 집 근처의 루프탑 카페에서 지켜보았습니다. 이전에는 을왕리로 차를 몰고 가서 일몰을 보곤 했는데 얼마 전에 집 근처에 몽벨 전용 아웃도어 빌딩이 생기고 그곳에 루프탑 카페가 있어 일몰을 보기에 훌륭한 뷰포인트가 되고 있습니다. 한해의 마지막 일몰이 특별할 건 없지만 그래도 금년과 내년이 나뉘는 분기점을 빌미삼아 한해를 정리하고 다시 시작되는 한해를 새롭게 맞이해야겠습니다. 일 년 동안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내년에는 더욱 알차고 창조적인 인생 만드시길 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Happ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