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강남 편/현암사/2003년 3월 30일/432쪽/15,000원
책소개
동양적 지혜와 여유로움의 세계를 담은 <장자> 번역 및 해설서. 인문학 분야의 베스트셀러였던 <도덕경> 번역해설서를 낸 저자가 유려한 한글번역에 현대적 해석을 가미했다. <장자> 내편을 완역하고, 장자의 후학 및 추종자들이 쓴 것으로 추정되는 외편, 잡편의 중요 텍스트를 번역했다. 장자의 현재적 의미를 전하는 현대적 감각이 돋보인다.
저자 및 편자 소개
장자 - 기원전 약 335 ~ 약 275. 이름은 주. 중국 고대의 철학자이며 문장가이다. 양혜왕, 제선왕과 같은 시대에 살았으며 칠원리라는 하급관리를 지냈다. 초나라 위왕이 재상으로 삼으려 했으나 전원에서 자유롭게 사는 길을 택했다.
오강남 - 1970년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및 동 대학원 졸업, 1976년 캐나다 맥매스터 대학에서 종교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80년부터 2004년 현재까지 캐나다 리자이나 대학교 비교종교학 교수 및 종교학과 과장으로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 <도덕경>, <장자풀이>를 비롯 <예수는 없다>가, 옮긴책으로 <살아계신 붓다, 살아계신 그리스도>가 있다. 1987년 제17회 코리아타임스 한국현대문학 영문번역상(장편소설 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독서 에세이
구만리 장천을 나는 붕새의 뜻은...
고대 그리스 문화를 수놓은 고전 철학의 시대에 중국에서는 제자백가(諸子百家)가 출현하여 왕성한 지적 활동을 벌였다. 그리스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활동하던 바로 그 무렵 중국에서는 장자(莊子, 기원전 365?-290?)가 자신의 사상을 펼쳤다.
묘하게도 아리스토텔레스가 당시 일세를 풍미하던 플라톤의 철학에 대립했듯이, 장자도 당시 대세를 장악하던 유가 사상을 비판했다. 우연의 일치라기보다는 그만큼 당시 동서 문명의 수준이 엇비슷했다는 것으로 봐야겠다. 동양에서나 서양에서나 인류 사상의 기본 골격이 형성된 시기는 같은 무
렵이었던 것이다.
장자는 유가와 더불어 오늘날까지 동양 사상의 양대 축을 이루고 있는 도가 사상의 대표 주자격인 사상가이다. 도가 사상은 노자가 창시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노자는 실존 인물인지조차 불분명할뿐더러 자신의 사상을 체계적으로 남기지 않았으므로 보통은 장자를 도가의 고전으로 꼽는다.
도가의 태두답게 장자의 인적 사항에 관해서는 본명이 주(周)라는 것과 송나라(전국 시대의 나라) 출신으로 말단 관리를 지냈다는 사실 외에는 별로 알려진 것이 없다.
당시 중국의 사상가들이 그랬듯이 장자 역시 직접 책을 짓기보다는 제자와 후학들이 그의 사상을 문헌으로 남기는 일을 맡았는데, 그 책이 바로 <장자>이다. 모두 33편으로 이루어진 <장자>는 내편(7편), 외편(15편), 잡편(11편)의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는데, 내편은 장자가 직접 썼고 나머지는 후학들이 정리한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내편이 되며, 그 가운데서도 맨 앞의 두 편인 소요유(逍遙游)와 제물론(齊物論)이 가장 중요하다.
장자의 시대, 전국 시대 말기는 극도의 혼란기였다. 이른바 '전국 7웅'을 비롯하여 중국 각지에 포진한 제후국들은 저마다 생존과 성장을 위해 무자비한 약육강식의 게임을 벌이고 있었다. 이런 난세에 어울리는 사상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시대에 부합하는 부류이다. 이를테면 처음부터 국가 통치 이념이 될 것을 겨냥한 유가나, 현실적인 권력 운용에 관심을 가지는 법가 같은 사상들이다. 다른 하나는 어지러운 현실에서 벗어나 참된 도리를 찾으려 하는 도가이다. 당연한 일이지만 유가와 법가가 주로 지배 집단에게 호소한 데 비해 도가는 일반 백성들 사이에 널리 퍼졌다.
그러나 철저히 현실 도피적인 노자의 사상에 비해 장자의 사상은 훨씬 너그럽고 부드럽다. <장자>의 첫 구절은 날개 하나가 '하늘 한 모퉁이를 덮은 구름'만한 크기에 달하는 붕새가 구만리 하늘을 날아오른다는 '엄청난 이야기'로 시작한다. 이렇게 도입부를 정한 이유는 전국 시대에 횡행하던 수많은 사상들 간의 치열한 논쟁이 덧없다는 것을 말하려는 데 있다.
아무리 복잡한 주제를 가지고 논쟁을 벌인다고 해도 더 크고 더 높은 관점에서, 즉 붕새의 관점에서 보면 사소한 것에 불과하다. 이처럼 장자는 당시에 이미 상대론적 사고를 취하고 있다.
"하늘이 푸른 것은 하늘의 본래 빛깔인가, 아니면 하늘이 멀고도 끝이 없어서 그런 것인가?" "아침에 났다가 저녁에 말라 죽는 버섯은 한 달의 기간을 알 수 없고, 여름에 나왔다 가을이면 죽는 매미는 봄, 가을이 있는 일 년을 알 수 없다."
진리를 찾는가? 그렇다면 그대가 찾는 진리가 진리인지 알 수 있게 해 주는 것은 뭔가? 장자는 바로 이렇게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어찌 보면 궤변 같아 보이는 이런 주장에 발끈한 혜자(惠子)라는 사람은 그릇이 너무 크면 쓸모가 없다는 말로 장자의 사상을 비웃는다. 그러나 장자는 그렇게 큰 그릇이 있다면 거기에 술을 담아 강이나 호수에 띄워 놀면 될 게 아니냐고 호탕하게 대답한다. 큰 물건은 큰 물건답게 써야 한다는 얘기다.
"그대는 큰 나무를 가지고 있으면서 어찌 그 용도가 없음을 근심하는가? 그것을 들에 심어 아무 근심 없이 그 곁을 거닐며 그 아래 편안히 누우면 되지 않는가?"
바로 여기서 '소요유(거닐며 논다)'라는 말이 비롯되었다. 하지만 소요유는 아직 너무 추상적이고 공허하다. 그래서 '제물론'에서는 장자의 사상이 본격적인 철학의 옷을 입고 나온다. 소요유에서 '유(遊)'의 개념을 제시했다면 제물론에서는 '도(道)'의 개념을 제시한다. 이 두 가지 개념이 장자 사상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이다.
그저 거닐고 놀면(유) 세상의 이치(도)를 알게 되는 걸까? 세상 만사의 판단은 다 그렇게 상대적인 걸까? 그렇지 않다. 장자는 상대성 위에 절대성의 기준을 마련한다. 그것이 바로 '절대적인 명지(明知, 밝은 지혜)'다.
"성인(聖人)은 상대적인 설에 의하지 않고 만물에 널리 미치는, 그 생성의 유일한 근원인 하늘에서 절대적인 근거를 구하여 그것에 따라 생각한다. 이것이 인(因, 자신의 주관을 없애고 도에 따르는 것)이다."
제물론의 마지막에는 유명한 호접몽(胡蝶夢)의 이야기가 나온다. 나비가 되어 자유로이 날아다니는 꿈을 꾸었다가 깨어 보니 내가 나비 꿈을 꾼 것인지, 아니면 나비가 내 꿈을 꾸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다. 다시 상대론일까? 아니다. 장자는 이렇게 말한다. "존재하는 것 같으면서도 정(定)함이 없는 것, 이것이 바로 사물의 끊임없는 변천이다."
상대성과 절대성이 무상히 오가는 것, 여기서 '유'와 '도'는 한데 합친다. - 남경태(전문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