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츠 M. 부케티츠| 원석영 역| 열음사| 2009.02.24 | 240p
[책소개]
사람들은 항상 말한다.
“나에게는 무엇이든 자유롭게 결정할 자유의지가 있다.”
많은 철학자는 말해왔다.
“인간에게는 이성적으로 판단할 자유의지가 있다.”
종교인들도 말해왔다.
“우리에게는 자유의지가 있다.”
그러나 정말 그런가?
어느 날, 한 남자가 승용차에 자기 아이를 두고 내렸다는 사실을 깜빡 잊었다. 아이는 뙤약볕이 내리쬐는 자동차에 방치되어 있다가 결국 숨을 거두었다. 이 경우 남자는 자유의지를 가지고 행동한 것일까? 그러므로 이 남자는 살인죄로 처벌받아 마땅한가?
이 남자에게는 자유의지가 없었으므로, 즉 자유로운 판단과 의도를 가지고 아이를 죽인 것이 아니므로 쉽사리 처벌할 수 없다면, 희대의 연쇄 살인범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자유의지의 잣대로 처벌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자유의지는 있는가? 없는가? 이 문제에 대한 진화생물학자의 대답은?
만약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없다면, 인간 세계의 질서 잡힌 공동생활은 과연 가능할까?
“도덕적 태도란 사리私利에 불과하다.” 빈 대학 교수이자 진화생물학자인 프란츠 부케티츠에게 자유의지란 진화 과정을 통해 생성된 환상이다. 이 입장을 받아들이면 우리의 법체계 등에 광범위한 결과를 불러오게 될 것이다.
― 쥐드도이체 차이퉁
자유란, 의지란 무엇인가? 인간에게는 정말로 ‘자유의지’가 있는가?
― 진화생물학자가 말하는 자유의지 문제, 도덕규범과 이원론에 대해 반기를 들다!
신간 [자유의지, 그 환상의 진화]는 얼핏 보기에 위험천만한 내용을 담고 있으나 진화론과 철학, 사회학적 사유라는 방대한 주제를 풍부한 인용과 사례로 쉽고 압축적으로 전달하는 장점을 지닌 책이기도 하다. 진화생물학자인 저자 프란츠 M. 부케티츠는 기존에 우리가 무의식적, 암묵적으로 동의해온 견해, 즉 “인간에게는 자율적인 행동 능력이 있다”는 것에 반기를 든다. 이러한 기존의 견해에 따르면 우리는 어떤 판단과 결정, 행동까지도 우리의 이성적·의식적 판단에 따라 자유롭게 할 수 있으며,바로 이러한 인간의 행동 능력이야말로 인간을 여타의 동물과 구분되게 하는 우월적 특질이자 인격체로 특징짓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네가 원하기만 한다면 너는 그것을 할 수 있다”는 자명한 테제에 대해 반기를 들면서 그 허구성을 밝힌다. 본의 아니게 자동차에 아이를 두고 내린 아빠, 자기 목숨을 끊으려고 기차에 몸을 던지는 사람은 과연 자율적으로 행동한 것인가? 저자는 이러한 판단하기 곤란한 문제들을 제시하면서, 이 문제에 대해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다”는 답을 해결책으로 내세우려면 그들이 그러한 선택을 하지 않을 수 있도록 동일한 가치를 지니는 또 다른 선택지들이 존재해야만 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단지 ‘그것, 그 행위’만을 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 처한 인간에게는 결코 ‘자유의지가 있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과거의 낡고 해묵은 ‘자유의지’ 이데올로기를 최신 뇌 과학 연구 성과와 각종 생물학적 실험 결과들, 즉 진화생물학적 사실을 통해 반박하고 논증한다.
결국 저자는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은 자유의지를 갖고 있다’고 믿는 환상을 진화시켜왔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우리가 스스로를 자유의지의 주체로 인식하게 된 것은 수세기 전부터 전해 내려온 사고방식에 기인한 것으로, 이러한 이념은 그 사회의 ‘도덕관’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도덕 원리를 해치는 잘못된 행동을 한다면 사회는 그 사람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데 그 까닭은 그가 책임 능력, 즉 무슨 일이든 자유롭게 할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결국 형법은 바로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한 이념에 의거해 있다.
부케티츠는 우선 자유의지에 관한 논의의 역사를 철학사적으로 조명(소크라테스-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아우구스티누스-칸트-쇼펜하우어 등)함으로써 자유의지 문제가 그간 어떤 궤적을 밟아왔는지 추적하는데, 결정론과 예정설, 심신이원론, 양립가능론 등의 이념 속에서 ‘의지’ 혹은 ‘자유의지’가 어떻게 다뤄져왔는지 보여준다. 이 가운데 저자의 생각을 가장 잘 대변해주는 것은 쇼펜하우어의 목소리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지만, 우리가 무엇을 원하든 그것은 세계의 철저한 인과성에 의해 확정되어 있다.”
...
저자는 ‘환상’이라는 것의 일반적인 개념을 다루면서 그것이 ‘자유의지’라는 개념과 관련해 어떤 특별한 의미를 띠는지 살피고, 이어 ‘생명체의 진화’에서 나타난 우연과 필연의 관계를 따져본다. 저자는 진화의 화살표가 결국 ‘인간’을 향하고 있다는 ‘인간 중심적 사고’의 허상에 대해서도 과학적 견해를 밝히고, 나아가 인간 정신의 진화 과정을 소개함으로써 ‘자유의지’라는 환상이 인간의 정신 작용에 어떻게 깃들어 인간에 내재화하게 되었는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저자가 강조하는 결론은 바로 환상의 유용성이다. 그것이 단지 자기기만일 뿐일지라도 ‘환상은 전적으로 유용하다’는 것이다. 신은 만들어졌지만 그 만들어진 신은 인간에게 쓸모가 있다. ‘인간은 자유롭다’는 환상 역시, 인간의 삶에 유용하다. 반대로 말하면, 그 유용성 덕택에 현재의 인간은 그러한 이념을 갖고 사는 것이다.
잘못된 믿음이 문제가 될 수도 있지만 없는 것보다는 낫다. 다시 말해 스스로가 무지하다고 느끼는 상태는 스스로가 알고 있다고 느끼는 것보다 더 나쁘다. 알고 있다는 느낌은 당연히 당사자를 안심시킨다. 오류와 기만이 어떤 식으로든 삶에 기여하는 것으로 증명되는 한(혹은 적어도 어떤 분명한 불이익을 가져다주지 않는 한), 어쨌든 진화는 그것들에게도 광범위한 공간을 제공해준다.
(/ p.68)
믿음이 산을 옮겨놓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믿음은 생활 형편이 불편한 사람들에게 마음의 의지가 되는 상태를 가져다줄 수 있다. 이것만 해도 어디인가. 반대로, 불공정한 세계에 대해 확신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불공정함을 지닌 세계가 곧 자신을 덮칠 것이라는 견해를 신봉하는 사람은 만족할 만한 인생을 살 기회가 거의 없으며 엄밀한 생물학적 의미에서도 생존에 별로 적합하지 않은 존재로 입증된다.
(/ p.76)
핵심을 말하자면 이렇다. 진화의 화살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만일 그런 것이 존재한다 해도 그것은 어느 특정한 방향을 향해 날아가지 않을 것이다. 인류를 포함해 지구에 있는 생명의 역사는 직선이 아니라 “지그재그 모양”이다. 진화에서는 ‘우연’이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진화가 전적으로 “무법칙적으로”, 전혀 비인과적으로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 가끔 특정한 방향이 강제될 수는 있지만 그래도 이후의 진행 과정을 미리 예측할 수는 없다.
(/ p.84)
자유의지 이념이 우리 뇌가 만든 것이며 “자유의지”가 독립적 실재라고 가정할 만한 어떤 불가피한 근거도 없음을 분명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자유의지의 문제는 우리가 문화적 존재, 즉 정신에 대한 이론을 만들어냄으로써 문화와 사회를 구축하도록 해준 뇌를 지닌 존재라는 것에서 기인한다”는 싱어의 주장에 동의해야 한다.
(/ p.126)
따라서 우리가 모든 정신 상태를 우리 몸의 다른 상태들과 별개인 것으로 고찰하지 않고, 이른바 우리 몸의 다양한 부위에서 나오는 모든 감각을 “단지” 결정점으로만 고찰한다면 인간 정신의 수수께끼는 풀린 것이다. (인간) 정신은 자율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복잡한 신경 프로세스들을 토대로 그때그때의 총체적인 상태(통증, 편안함, 기쁨, 괴로움, 화, 분노 등)와 관련될 수 있는 모든 정보를 특수한 방식으로 처리한다. 이 때문에 자율과 자유에 대한 주관적 느낌은 보통 우리의 생존에 기여하지만, 결국 그것은 바로 그 점 때문에 다시 우리를 속일 수 있는 프로세스들의 결과에 불과하게 된다.
(/ p.136)
그러나 안심하라, 우리는 바로 그 ‘환상’과 더불어 살아갈 것이다
- 여전히 우리는 자유롭다, 우리의 균형 잡힌 공동생활은 계속 가능하다!
의외로 저자 부케티츠는 전혀 비관적인 결론을 내놓지 않고 있다. 그는 인간이 가진, 어리석어 보이지만 유용한 환상의 실체(“인간은 자유롭다”)를 밝히면서도, 그러한 실체가 만든 문화와 이념이 결코 해묵은 철학 개념처럼 “우리 본성의 적대자”는 아니라고 말한다. 오히려 그것은 우리의 계통발생사적 유산을 함께 짊어지고 가는 파트너다.
저자에 따르면, “어떤 현상을 (자연과학적으로) 설명한다는 것이 그 현상을 제거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어떤 파티에 초대된 손님들이 자신들이 의식하지 못한 여러 동기에 따라 의도하지 않고 파티 석상에 모였을 뿐이라는 게 밝혀지더라도, 파티가 그 의미를 상실하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이제 저자는 우리가 어떻게 어렵사리 깨달은 그 사실, 즉 ‘자유의지는 환상이다’라는 생각과 더불어 이전처럼 삶을 영위해갈 수 있는지를 밝힌다. 이때 그는 자유의 세 가지 지평을 소개한다. 그에 따르면, 우리는 ‘생각의 자유’, ‘결정의 자유’, ‘행동의 자유’라는 세 가지 자유를 갖는다. 즉, 우리는 대체로 자유롭게 생각할지라도 늘 자유롭게 행동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의 자유 앞에는 언제나 사회적·외적 상황이 놓여 있고, ‘사회적 동물’로서 진화해온 인간은 실제로 그러한 외적 상황에 의해 규정된다. 결국 우리에게 ‘자유의지’가 없다고 하더라도,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어지간한 공동생활과 규범 작동(범죄자 처벌 같은)은 여전히 가능하다. 또한 우리는 이러한 규제들에 대해 ‘억압’으로 느끼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생활 속에서 우리가 언제나 ‘스스로의 자유의지 문제’를 매 순간 숙고하고 결정하거나 행동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나아가 저자는 사회적 법체계와 규범 체계로까지 시선을 가져간다. ‘자유의지’ 이념을 국가는 어떻게 악용해왔는가? ‘자유의지 이념’을 매개로 국가가 개인을 어떤 방식으로 억압해왔는지, 저자는 묻는다. 저자는, 법률가들과 사회학자들에게 ‘생물학적 인간 이해’가 필요하다고 역설하기도 한다. 이러한 저변에는 오늘날 ‘법제화’라는 이데올로기가 인간의 진정한 지유를 망치는 도구가 되고 있지는 않는가 하는 반문이 아로새겨져 있다. 즉, 법률에 모든 판단을 맡겨버리는 “법제화된 세계”라는 위험이 각 개인의 행동반경을 철저히 제한하고 개인 간의 의사소통의 능력을 빼앗아가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현대 사회에 대한 뼈아픈 통찰이다.
[작가소개]
프란츠 M. 부케티츠
부케티츠 박사는 빈 대학 교수로서 국제적으로 저명한 생물학자이자 과학철학자이다. 그는 빈 대학 외에도 여러 대학에서 강의했고 초빙 교수로도 활동했으며 진화론, 진화론적 인식론, 진화론적 윤리학, 사회생물학, 생물학의 역사와 이론 등 다방면에 걸쳐 활발한 연구와 저술 작업을 펼쳐왔다. 1982년 오스트리아 학술출판상을 수상했고, 진화-인지 연구를 위한 알텐베르크의 콘라트 로렌츠 연구소 부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사회생물학 논쟁」「신, 인간 그리고 과학」「멸종-사라진 것들」「우리 안의 원숭이」등이 있다.
[목차]
서론 | 당신은 정말 자유로운가?
1. 자유의지, 있다? 없다?
자유의지에 관한 철학자들의 생각 / 본성에서 자유로운 인간은 없다
2. 자유의지는 환상이다
신의 유용성 - ‘필요한 신’의 탄생 / “미신 역시 ‘믿음’의 한 형태일 뿐…” / 어째서 우리는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어야 하는가? / ‘세계는 공정하다’라는 믿음 혹은 환상의 용도 / 그것은 결국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일?!
3. 우연과 필연
진화의 화살표는 인간을 향해 있었다? / 진화는 맹목적이고 근시안적인 건축 / 진화에 ‘의도된 목적’은 없다 / 큰 여파를 지닌 “작은 걸음” / 결국 모든 것은 교착 상태에 빠진다
4. 인간 정신의 진화와 수수께끼
뇌에 달려 있다 / 뇌와 정신의 단일성 / 인간 정신의 수수께끼는 이미 풀렸다 / 모든 행동은 신경 프로세스가 결정해놓은 것
5. 의지의 부자유, 환상의 진화
의미를 추구하는 형이상학적 인간들 / 누가 이 세계의 불가사의함을 설명해줄 수 있는가? / 호모 파베르, 자유의지의 기원 / 자유의 세 가지 지평 ― 생각의 자유, 결정의 자유, 행동의 자유
6. 의지의 비자유, 환상과 더불어 사는 삶
유전자와 뉴런과 호르몬 또는 우리 자신 / 강간범과 살인자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 이유 / 자유의지 이념의 위험하고 어두운 본색
후기 | 자유와 존엄성의 저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