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바 킬피 / 들녘
에바 킬피는 시인이자 페미니스트이며, 핀란드의 대표 작가로 해외에 더 널리 알려졌으며 노벨문학상 수상자로도 거론된다. 『타마라』는 출간 당시 핀란드에서 논란에 휩싸였다. 논란의 배경에는 물론 다른 것들도 있겠으나, 그 핵심에는 화자인 ‘나’의 시선을 통해 성性적 주체主體로서 묘사되는 ‘타마라’라는 등장인물이 있다. 타마라는 성적으로 자유분방하고, 결혼한 남자와의 애정 전선에 뛰어드는 데 거리낌이 없으며,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아들은 있는 여성이다. 반면 대학교수이지만 지식인에 대한 경멸을 품고 있는 ‘나’는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되어 성적으로 ‘불능’인 남자다. 이들은 이상야릇하고 기이한 연인들이다. 여자가 만나 섹스를 한 남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에게 털어놓고, ‘나’는 그를 통해 만족을 느낀다는 점에서 일단 그렇다. 독자는 ‘나’의 시선을 따라 이들이 존재를 쏟아 부으며 고통 속에서 찾아 헤매는 사랑의 영속성을, 그 영속성이 과연 가능한 것인가를 탐구하게 된다.
『타마라』가 핀란드에서 1972년에 출간(WSOY)되고, 유럽 각국에서 곧 번역이 이어졌다. 스웨덴어(Askild & Karnekull, 1974)를 시작으로 독일어(Luzern, 1974), 프랑스어(Flammarion, 1975), 네덜란드어(Haarlem, 1976), 슬로베니아어(Murska Sobota, 1976), 영어(Delacorte Press, 1978), 세르보크로아티아어(Naprijed, 1981), 덴마크어(Lindhardt og Ringhof, 1984), 그리스어(Hestia, 1990), 알바니아어(Tirane Dituria, 2007) 순으로 출간되었고, 아시아에서는 일본(二見書房, 1974)이 일찌감치 번역판을 출간했다. 우리말판은 일본에 이어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출간되는 것이다.
이 책은 타마라라는 여인이 사고로 성불구가 된 남자과 맺어나가는 남다른 애정관계를 다룬다. 남자는 ‘체크무늬 사내’ ‘공산주의자’ ‘자본가’ 등의 별명으로 불리는 타마라의 숱한 애인들과 자기 자신을 동일시하며 만족을 얻는다. 그렇기에 남자는 타마라에게 최대한 자세히, 상세하게 각종 행위를 묘사해달라고 요구한다. 비록 육체의 움직임이 불편할지언정 남자의 정신은 누구보다 민감하고 섬세하다. 그는 타마라에 대한 사랑과 질투, 욕망과 신체적 제약 사이에서 갈등하며 내면을 넓혀나간다. 그가 최종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다름 아닌 ‘영속성’이다. 그렇기에 타마라는 그에게 유일한 여자이며, 타마라에게도 그 자신이 최종적인 남자이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타마라 또한 남자에게, 사실은 무조건적인 사랑, 영속적인 것을 찾아 헤매고 있다고 고백한다. 그렇다면 이들은, 서로 같은 것을 찾고 있는 것일까?
언뜻 이 책은 육체적 사랑과 쾌락에 빠진 한 여자의 삶을 묘사하는 것이 목적인 듯 보이나, 독자는 남자와 타마라가 나누는 대화를 통해, 이 책이 여성심리의 단호한 해방 의지를 표출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작가인 에바 킬피는 이 책에서 편견, 위선, 우리 인생을 죄스럽고 고통스럽게 만드는 온갖 족쇄들에 공격을 가한다. 최종적으로는 모든 여성, 핀란드뿐 아니라 전 세계의 모든 여성이 성(性)과 애정생활에서 주체가 되어야 함을 주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