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1월 장편소설 『운명게임』을 출간한 이후 4개월,
그동안 집필 때문에 쌓아두었던 책들을 몰아 읽느라 책벌레가 된 느낌이었습니다.
대부분 재미없는 책들이었는데 그 와중에 우연하게 기회가 닿아
사진작가이자 행위예술가, 화가인 김미루의 사진산문집을 접했습니다.
도(道)를 물어 선(禪)을 향해 간 기록, 『문도선행록(問道禪行錄)』.
658쪽의 방대한 분량에 사막에서 몸으로 예술한 그녀의 기록이 소름 돋게 옮겨져 있었습니다.
신기하게도 그 책에 저장된 치밀하고 치열한 사막 기록이 저의 사막 경험에 겹쳐져
그동안 해결되지 못하고 맴돌이를 이루던 제 내면의 문제를 말끔하게 정리해 주었습니다.
2013년 고비와 타클라마칸 사막, 그리고 천산산맥을 거쳐 파마르고원으로 가는 동안
저를 끊임없이 유혹하던 사막의 에너지가 무엇이었는지
김미루의 658쪽 기록문을 읽고 확연하게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무의식적 갈망의 시공, 원초적 공간성,
그리고 우리가 진정한 자아를 만날 수 있는 침묵이 그곳에는 충만해 있었습니다.
이 책을 읽는 것으로 사막에 대해 애매했던 그동안의 감정을 정리하고
무의식적으로도 끊어지지 않던 오래된 미련을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외장하드에 저장된 2013년의 사막 사진 파일을 열어보며
한동안 나의 사막, 나의 공허, 나의 갈망, 나의 침묵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소중한 경험과 기록, 그것을 위해 다시 길을 떠나야겠다는 다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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