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데스크탑 테이블에 세팅된 카메라 난민촌입니다.
카메라와 렌즈를 보관하는 온습도 조절 캐비닛이 따로 있는데
코로나가 한창이던 언제부터인가 저 친구들은 캐비닛을 떠나
출사의 그날을 기다리며 저곳에서 노숙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데스크탑으로 작업을 하는 동안 그들의 난민캠프가 지척에 있어
위안이 되기도 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그들도 저도 때를 기다리는 중인데
어쩐 일인지 한번 끊어진 맥은 좀체 부활의 기미를 보이지 않습니다.
원래 사진을 위한 사진을 싫어하고 인연 따라 찍는 걸 좋아해서
특별한 출사 같은 걸 하지 않고 살아온 터이지만
이제는 인연따라 카메라를 동반할 기회도 잘 생기지 않는 것 같습니다.
곰곰 되새겨보니 마음의 여유가 없어졌다는 것!
이번 입원 기간 중에 병원에서 되새길 수 있었습니다.
하여 이제는 특별한 동반의 기회를 기다리지 않고
그들에게 먼저 기회를 주고 그들의 길을 따라가보기로 했습니다.
하루 일과 중 산책하는 시간에도 동반하는 캐주얼한 관계,
그러니까 사진을 의식하지 않고 무심하게 그들을 데리고 다니기로 했습니다.
휴대폰 카메라에 너무 많은 기회를 제공한 데 대한 미안함,
그렇게라도 풀지 않으면 저들의 생명이 난민촌에서 끝날 것 같다는 우려가 깊습니다.
나에게 카메라는 무엇인가?
그것은 빛의 정보를 저장해주는 매력적인 장난감입니다.
진짜 사진은 그 빛의 정보를 바탕으로 시작되는 뇌와 의식의 인화작업,
카메라가 아니라 마음에 찍힌 인상을 찾아내는 재창조 작업입니다.
그래서 저는 기본적인 포토샵 작업을 합니다.
저에게는 그것이 이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무아지경의 놀이입니다.
다음 생애는 사진작가로 태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생에 만났던 많은 작가들 다시 만나
그들의 프로필 사진을 멋지게 찍어주는 마인드 포토그래퍼!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