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로 마키아벨리/까치/2003년 5월 25일/258쪽/8,000원
책소개
16세기 이탈리아의 정치사상가 마키아벨리의 저서. 1532년 간행. 르네상스시대의 대표적인 정치적 저작으로 근대정치사상사에서 중요한 의의를 지니고 있다. 저자가 묘사하는 군주의 모습은 이를테면 반인반수(半人半獸)가 될 수 있어서 인간과 짐승을 부릴 줄 알아야 하며(18장), 그 이상상(理想像)을 '여우와 사자의 2역을 실행하는' 군주의 모습에서 찾아냈다.
저자는 인간성에 대하여 조금도 존경을 보이지 않고 가차없이 인간의 모든 심리적인 약점을 들추어 폭로하면서 새로운 정치의 기술을 논하고 있으며, 이러한 점에 소위 마키아벨리즘의 본질이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근대정치사상사의 고전적 저작 중에서 본서만큼 논의를 불러일으킨 것은 없으며, 여기에서 보이는 저자의 사상뿐만 아니라 집필동기를 둘러싸고 숱한 해석이 행해졌다. 오늘날 마키아벨리즘은 당시 이탈리아의 정치적 상황에서 생긴 필요악으로 이해되고 있다. --한메디지털백과사전
책 속에서
인간이란 원래 은혜도 모르고, 변덕이 심하며, 위선자요, 염치가 없고, 제 몸을 아끼고, 물욕에 눈이 어두운 속물이다... 게다가 인간은 자기가 두려워하는 자보다도 사랑하는 자를 더 쉽게 배반한다. 그 이유는 원래 인간은 사악하여 단순히 의리의 기반에 매인 정 같은 것은 자기의 이해 관계 앞에서 언제나 서슴 없이 끊어 버리기 때문이다.
저자 소개
니콜로 마키아벨리 (Niccolo Machiavelli) - 1469~1527. 르네상스시대 이탈리아 피렌체의 외교관, 정치이론가. 피렌체는 1494년에 그때까지의 실질적 지배자였던 메디치가를 추방하고 공화정으로 복귀했는데 마키아벨리는 98년 이 공화정에서 군사·외교를 담당하는 제2서기국장에 취임하였다.
당시 이탈리아의 군대는 용병대가 중심이었는데, 외교의 고초를 겪는 가운데 그는 군대제도 자체를 바꾸지 않는 한, 피렌체를 비롯하여 이탈리아의 정치적 몰락을 막을 방법은 없다고 판단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피렌체의 유력자인 피에로 소데리니의 지지를 얻어 피렌체 주변의 농민으로 구성된 새로운 군대를 창설하였다. 1509년 이 신군대는 오랫동안 피렌체를 괴롭혀 왔던 피사의 반란을 진압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마키아벨리의 평판도 높아졌다.
그러나 12년 메디치가가 로마교황과 에스파냐의 후원으로 피렌체로의 복귀를 꾀하자 공화정은 군사적으로 붕괴하였고, 그는 그 자리에서 쫓겨났다. 반메디치파로 낙인 찍힌 그는 한때 음모혐의로 투옥되었고, 교외에 은거하였다.
이런 가운데서도 그의 정치활동에 대한 정열은 식지 않았고, 특히 이탈리아를 둘러싼 외교·군사 정세에 강한 관심을 기울이는 한편 다시 활동할 무대를 찾아 메디치가로 접근하였다. <군주론>(1513)은 이런 상황하에서 단숨에 쓰여졌다.
그러나 문필가로서의 그의 명성을 더욱 높였던 것은 희극 <만드라골라>(1518)에서였다. 1520년 무렵부티 마키아벨리와 메디치가와의 관계가 호전되기 시작했는데, 그 한 예가 <피렌체사> 집필 의뢰였다.
그에게 호의적이었던 줄리오 데 메디치가 교황 클레멘스 7세로 선출되자 마키아벨리는 막 완성한 <피렌체사>를 가지고 25년 로마로 갔다.
그때는 프랑스왕이 신성로마황제 카를 5세에게 대패하고 이탈리아는 합스부르크가의 지배에 굴복하려 하였다. 구이치아르디니와 여러 가지 대책을 협의했던 마키아벨리는 피렌체 방어의 임무를 맡았지만, 황제군이 로마에 공격해 들어오고 피렌체는 다시 공화국으로 바뀌었고, 1개월 후 그는 죽었다. --한메디지털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