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우 고간

프로방스의 오후 new

레무리안2023-02-03

2월 1일 밤, 그리고 2월 2일 새벽에 프로방스가 뇌리에 꽂혀 2월 2일 오후에 차를 몰고 그곳으로 갔습니다. 프랑스의 프로방스가 아니라 그것을 모방한 파주의 쁘띠 프로방스, 제가 가끔 머리 식히고 싶을 때 카메라를 들고 가는 곳입니다. 겨울이라 사람이 별로 없고 썰렁할 뿐만 아니라 한때의 번성이 지나간 뒤의 퇴락한 분위기가 혼자 간 사람에게는 커피맛을 당기게 하는 잠잠한 풍광을 제공합니다. 몇 시간 혼자 시간을 보내며 카메라와 사진, 그리고 그것들이 연출하는 제 인생의 또다른 영역에 대해 2월 2일 오후는 명징하고 가슴...

설날, 민트에 대하여

레무리안2023-01-23

설날 밤, 부산에서 교수로 재직 중인 후배가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일가친족들이 집에 모여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자신은 담배를 피우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고 했습니다. 술을 마시는 중인 듯하여 몇 마디 덕담을 나누고 전화를 끊었는데 후배는 곧이어 다시 전화를 걸어와 느닷없이 민트에 관한 소식을 물었습니다. 후배도 고양이 두 마리를 키우다가 한 놈은 하늘나라로 보내고 다른 한 놈은 극심한 고양이 알레르기로 인해 딴 집으로 보냈다며 그 놈들 생각으로 문득 제가 기르는 민트 생각이 났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민트 사진...

[신간] 사랑에 관한 몇 개의 시선

레무리안2023-01-16

https://blog.naver.com/yana_stella/222986140837 https://storycosmos.com/genre/01_view.php?no=223&sort=&gs=1&qa=&aa=&wa=2&quantity=&author_type=&page=

현자들의 숲에서

레무리안2023-01-15

일요일인데 아침부터 현자들의 숲속으로 걸어들어갔습니다. 세상만사 우주만물 핵심 부분의 요지를 한자리에서 접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이라고 말하는 순간 그것이 되지 않는 신비, 차라리 그냥 그대로 머무는 것이 상책이 되는 가르침, 그것이 그것이라는 것을 말하지 않고 그것이 이미 완성형임을 자각하고, 자각하는 의식 자체도 자각할 필요가 없는 경지에 대하여 현자들은 똑같은 말을 자신만의 화법으로 돌아가며 들려주었습니다. 그것이 그것이니 그것이 그것이라고 말할 필요도 없는 그것에 대하여!^^ 빈 하늘처럼 그것은 어떤 ...

내용 없는 아름다움에 대하여

레무리안2023-01-13

나는 지금도 김종삼 시집 『북치는 소년』의 초판을 소장하고 있다. 1979년 5월에 발간된 것이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종이는 누렇게 바래고 시인은 세상을 떠났다. 시집이 발간되던 1979년에 나는 대학 3학년이었다. 대학시절 시를 쓰던 나에게 김종삼 시집의 발견은 참으로 크나큰 위안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왜 위안이었는지를 나는 지금도 설명하지 못한다. ‘내용 없는 아름다움’이 있는 것처럼 ‘이유 없는 이끌림’도 있는 것이다. 나는 그의 시집을 항상 가방에 넣고 다녔고, 시간이 날 때마다 시집을 꺼내...

어떤 부름에 대하여

레무리안2023-01-06

연초에 모임이 있어 종로에 나갔습니다. 모임이 다 끝나고 일행과 헤어진 뒤 혼자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등을 기다리다가 대각선 맞은편의 낡고 불 꺼진 건물을 올려다보았습니다. 3층 건물 1,2층은 모두 불이 꺼졌는데 단 하나, 3층의 한 창에서만 불빛이 밀려나오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아주 기이하고 이상한 부름이 뇌리로 날아들어 알 수 없는 인력에 이끌리듯 횡당보도를 건너고 불이 꺼진 건물 계단을 올라 3층까지 갔습니다. 그리고 손님이 하나도 없고, 스탠드 안에 두 명의 남자만 서 있는 기이한 카페 통유리 옆자리에 앉아 ...

2022년의 마지막 일몰

레무리안2022-12-31

2022년의 마지막 일몰을 집 근처의 루프탑 카페에서 지켜보았습니다. 이전에는 을왕리로 차를 몰고 가서 일몰을 보곤 했는데 얼마 전에 집 근처에 몽벨 전용 아웃도어 빌딩이 생기고 그곳에 루프탑 카페가 있어 일몰을 보기에 훌륭한 뷰포인트가 되고 있습니다. 한해의 마지막 일몰이 특별할 건 없지만 그래도 금년과 내년이 나뉘는 분기점을 빌미삼아 한해를 정리하고 다시 시작되는 한해를 새롭게 맞이해야겠습니다. 일 년 동안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내년에는 더욱 알차고 창조적인 인생 만드시길 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Happy ...

이월가치 지닌 책을 고르는 일

레무리안2022-12-21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책들은 어떤 것들일까. 어딘가에 이런 주제로 책을 추천하는 연재를 하기로 해서 며칠 동안 온 서재를 발칵 뒤집어가며 책들을 선별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가차없이 미래지향적인 관점에서 책들을 고르려다 보니 과거와의 격한 단절을 꾀하지 않고는 의미 있는 선별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세상에는 하늘의 별만큼이나 많은 책들이 있고 그 책들은 저마다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지만 지금 여기, 21세기에 두 발을 딛고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3차원 세상에 대한 ...

인연이 소멸되는 풍경

레무리안2022-11-23

오랜만에 양양 조산리에 다녀왔습니다. 코로나로 인한 긴 단절을 끝내고 그곳으로 갈 때는 이전 시점의 기억으로 기대가 한껏 부풀었는데 막상 현장에 당도하여 느낀 첫 소감은 너무 충격적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빛을 잃고 판이해진 풍광 앞에서 이제 이곳과의 인연이 완전히 끝이 났구나, 하는 걸 절감하고 돌아올 때까지, 돌아온 뒤에도 긴긴 인연의 속절없는 소멸을 아프게 되새겨야 했습니다. 하지만 인생 만사가 다 이와 같은 생성과 소멸, 만남과 이별이니 이것을 갈무리하고 저작하여 또다른 출발의 발판으로 삼아야겠습니다. 회자...

내 마음의 미확인비행물체

레무리안2022-11-10

월요일 오전에 우연히 휴대폰 갤러리를 열었더니 언제 찍은 것인지 기억나지 않는 이런 사진이 저장돼 있었습니다. 촬영일시를 보니 2022년 11월 5일 오후 11시 28분. 강의를 하고, 작가들과의 약속이 있었던 그날, 언제 어디서 저런 사진을 찍은 것인지 기억이 나지 않았습니다. 11시 28분이면 만남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인데 마치 내가 찍은 게 아니고 피사체 스스로 찍히게 만든 장면처럼 보였습니다. 신기한 것은 사진에 찍힌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인데 보는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신기한 물체, 미확인 물체라고 했는데 ...

막걸리 유발 시인 김주대

레무리안2022-11-03

지난 9월 20일, 익선동에서 김주대 시인을 처음 만났습니다. 모두 일곱 명이 모인 자리에서 서로서로 자신의 책을 주고받았습니다. 저는 유월에 출간한 에세이집 『검색어 : 삶의 의미』를 건네고 김주대 시인은 자신의 이야기 서화집 『포옹』을 제게 주었습니다. 직관적으로 만나야 할 인연을 만난 듯한 느낌을 그 자리에서 받았는데 집으로 돌아와 그의 이야기 서화집을 읽고 그림을 감상하며 아, 이 책은 빨리 읽으면 안되겠구나, 하는 직감에 사로잡히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근 한 달에 걸쳐 여러 차례 나누어 읽었는데 기이하게도 ...

체증의 문제

레무리안2022-11-03

마음이 울적해서 화요일 오후에 혼자 송추계곡으로 갔습니다. 오후 서너 시경, 햇볕이 한창 좋을 때였는데 평상시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사람이 없었습니다. 지난주 후반부터 시작된 체증이 일요일이 되면서 더욱 심해져 음식을 전폐하고 단식 수준으로 버티고 있었는데 천천히 산길을 오르면서 관망하자니 가을은 깊을 대로 깊어져 만산홍엽이 되어 있었습니다. 위에 돌덩어리가 막혀 있는 느낌, 그것이 육체적인 것인지 정신적인 것인지 분간하기 어려워 오르고 내리는 와중에도 단풍이 단풍으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막힌 체증...

2022-10-29

레무리안2022-11-01

루쉰, 진정한 인생의 초상

레무리안2022-10-28

십여 년 전쯤, 어떤 잡지로부터 <나의 여행 앨범> 청탁을 받고 사진 한 장과 원고를 첨부해 보냈습니다. 본인이 실린 기사나 잡지를 한 점도 모아두지 않고 모두 버리는 성정이고 심지어 책을 출간하고 나면 그것까지 눈에 안 띄게 모두 처리하는지라 <나의 여행 앨범>이 실린 잡지도 버리려다가 문득 그 사진을 중국에서 찍어준 중앙일보 손민호 기자와 그 원고를 쓰던 당시의 심정이 태클을 걸어 그 페이지만 찢어 작업실 벽에 붙여 두고 지냈습니다. 원고에 기록한 나의 심정을 잊지 않고 살겠다는 심정이었을 터인데 십년...

결혼식 후감

레무리안2022-10-17

일요일, 참으로 오랜만에 친척의 결혼식에 참석했습니다. 결혼식장에 간 게 사오 년 전의 일인 듯한데 코로나 이전의 일들이라 기억이 아슴푸레하였습니다. 결혼을 기피하는 사회풍조까지 곁들여져 오랜만에 참석한 결혼식장에서 많은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객들은 내용을 이미 다 알고 있는 연극에 동참한 표정으로 인생의 새로운 관문으로 들어서는 신랑신부를 축하했고 친척들은 세상 떠난 분들에 대한 얘기,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집안 이야기를 주고받았습니다. 가족 생성을 기피하는 시대의 결혼은 정말 용기 있는 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