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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라는 연극무대의 배우들에게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작가적 삶의 본질은 인간과 인생에 대한 탐구이다. 이 세상의 모든 소설이 인간을 등장시켜 인생의 문제를 다루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인간과 인생에 대한 의문이 상당히 이른 나이부터 눈을 떠 작가가 된 뒤로 더욱 가열차게 심화되었다. 소설을 쓰는 것도 욕망의 두레박질이라는 자각을 얻은 뒤로는 이 탐사와 탐구가 거의 필사적인 상태로 심화되었다. 살아생전 삶과 죽음이라는 생성과 소멸의 문제에 대해 근원적인 답을 얻고 싶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자유의지로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없다. 마찬가지로 어느 누구도 자신이 살고 싶은 대로 인생을 살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죽는 날도 자신의 자의사와 무관하게 다가온다. 그래서 생명, 운명, 수명에는 명령[命]의 의미가 붙어 있다. 누가 왜 이런 프로그램 명령을 부여하는가, 하는 것이 내 탐사와 탐구의 주안점이 되었다. 그것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온갖 분야의 공부를 하고 나중에는 과학 분야까지 파고들어 많은 결실을 얻었다. 그래서 이제는 상당히 느긋한 심사로 주어지는 인생의 나날을 레고 놀이 하듯 살고 있다. 나에게 주어진 인생이 나의 것이 아니라는 걸 완전하게 깨달은 것이다.
세상의 가르침 중에는 위험한 세뇌들이 많다. 무조건적으로 가르침을 받아들이기보다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우러나는 것들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인생의 시작도 끝도 모두 ‘나’와 결부되지만 그 ‘나’라는 것이 헛것, 다시 말해 일종의 망상이라는 게 이제는 확연한 진실이 되었다. 수천 년 전부터 전해져 내려온 깊은 가르침이 21세기에 이르러 과학과 접목되는 놀라운 진경을 목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의 여러 군데에서 반복적으로 ‘나’를 문제 삼고 있고 그것을 문제 해결의 유일무이한 방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는 사실이 있다’는 가르침은 사실 석가모니로부터 비롯된 것인데 그것이 21세기의 과학자들에 의해 낱낱이 밝혀지는 장면은 참으로 진경이 아닐 수 없다.
인생은 일종의 연극무대이고 인간은 주어진 배역을 살아가는 배우들이다. ‘사람’이라는 영어 단어 퍼슨(person)의 어원이 ‘가면’의 의미를 지닌 페르소나(persona)라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사람’이라는 존재의 의미가 연극배우들이 쓰는 ‘가면’이라는 게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옛사람들의 통찰력이 놀라울 따름이다.
결국 이번 인생에 자신에게 주어진 배역에 충실할 필요성이 역으로 강조된다. 연극 못하겠다고 무대를 뛰쳐나가 노숙자가 되는 것도 자유이고 자살을 하는 것도 자유이지만 그 문제에 대한 인과도 결국 자신에게 돌아와 ‘지금, 바로, 이곳’의 내 배역을 구성하는 필요불가결한 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자작자수 자업자득(自作自守 自業自得). 현재의 나에게 주어지는 인생대본은 결국 나에게서 비롯되었다는 걸 알게 하는 것이다. 주어지는 인생을 왜 성실하게 잘 살아야 하는가, 더 이상 길게 말할 필요가 없으리라.
지구는 학교, 인생은 학습, 인간은 학생이다. ‘현고학생부군신위(顯考學生府君神位)’―그것이 지구 졸업생의 명패이다. 지구학교 학생의 기본자세에 대한 만고불변의 규정은 없다. 학생수칙을 일반화하고 규범화해서 세뇌시키는 일은 제도를 유지하는 자들의 관점에서는 중요하지만 개인의 관점에서는 많은 장애를 유발시킬 가능성이 있다. 이 문제를 빗댄 저승 일화 한 토막을 푸는 것으로 『검색어 : 삶의 의미』의 대미를 장식해야겠다.
살아생전 죄를 한 번도 짓지 않았다고 자부하는 목사가 있었다. 그가 죽은 뒤 어찌된 일인지 그의 혼은 회색지대의 황량한 공간에 방치돼 있었다. 그는 자신이 마땅히 천국에 가게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주변을 둘러보니 노숙자 부랑자 사기꾼 같은 존재들만 얼쩡거리고 있었다. 천사들이 나팔을 불며 환영해도 시원찮을 판에 이 무슨 용서받지 못할 저승세계의 행정 착오란 말인가! 목사는 그곳의 지도령을 찾아가 자신은 살아생전 죄를 한 번도 지은 적이 없는 목자인데 왜 이런 곳에 방치하느냐고 따져 물었다. 그러자 지도령이 준엄한 표정으로 이렇게 꾸짖었다.
“너는 너 자신을 위한 이기심으로 죄를 짓지 않은 것이니 이기심으로 죄를 짓고 이곳에 온 자들과 하등 다를 게 없다. 알아듣겠느냐?”
21세기의 어느 날, 지구학생 박상우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