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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부터 '서역西域'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리곤 했다. 서역이라는 지명 속에 엄청난 기억과 사연이 숨어 있는 것 같은 아스라함, 그러니까 그것이 내 존재의 블랙홀이거나 블랙박스 같다는 느낌에 나도 모르게 사로잡히곤 한 것이었다. 그러다가 윤후명 선생의 『둔황의 사랑』을 읽고 완전히 매료당해 서역에 대한 동경과 흠모의 정은 날이 갈수록 깊어만 갔다. 하지만 고비 사막과 타클라마칸 사막을 품고 있는 서역을 혼자 여행한다는 건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그것이 너무나도 간절한 염원이었기 때문인가. 드디어 그 꿈을 실현할 기회가 주어졌다. 실크로드의 출발 기점이 중국의 시안(장안)이 아니라 신라의 경주였다는 걸 입증하는 프로젝트를 경상도 지자체에서 추진했고 그것을 위한 탐사1팀으로 화가 이인 형과 내가 한 팀이 되어 드디어 꿈을 실현할 기회가 주어진 것이었다. 1만 킬로미터가 넘는 거리와 촉박한 일정, 밤기차를 이용한 힘겨운 강행군이었지만 실크로드의 주요 도시를 두루 둘러보고 유적지를 살필 수 있어 내 인생의 서역 공부가 비로소 완성되었다.
내 전생의 인생 무대였던 듯 한없이 애틋하고 살갑게 느껴지던 사막과 폐허의 풍경을 스쳐가며, 그리고 그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지켜보며 가슴 깊은 곳에서 엄청난 진동이 일어나는 걸 무시로 느끼곤 했다. 그렇게 파미르 고원 3,600m 지점의 칼라쿨리 호수에서 반환점을 찍고 돌아온 길고 험난했던 여정을 이렇게 기록으로 남기고 공유할 수 있어 기쁘기 그지없다. 중요한 사진들을 첨부하면서 서역의 시간성 속으로 다시 한번 빠져들어가 '지금 이곳'에서의 내 존재성을 완전히 망각할 수 있었다. 물리적 존재성은 여기 있는데 정신적 존재성은 여전히 서역을 떠돌고 있는 것이나 아닌지.
서역은 내 전생의 블랙박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