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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로 사는 동안 아주 깊은 슬럼프를 경험한 적이 있었다. 이래도 저래도 글이 안 써지고 정서가 사방팔방으로 흩어져 도무지 중심을 잡을 수 없었다. 어떤 선배에게 자문을 구했더니 연애를 하라고 하고, 어떤 동료작가에게 자문을 구했더니 그냥 가만히 있으라고 했다. 나는 연애도 하지 않고 그냥 가만히 있지 않고 별장을 가진 지인을 만나 술을 마시고 다짜고짜 별장 키를 달라고 했다. 그렇게 해서 고성군 산중에 있는 별장에서 두 달을 보내며 미친 듯 주변을 들쑤시고 다녔다. 새벽에 별장을 나서 7번 국도를 타고 포항까지 쉬지 않고 달렸다가 곧바로 차를 돌려 다시 7번 국도를 타고 고성으로 되돌아오기도 했다. 미시령, 진부령, 한계령을 오르내리다가 남방한계선을 넘어 통일전망대로 올라가 궁창 같은 바다를 보기 시작했는데, 거기서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던 지명과 맞닥뜨려 온몸에 전율을 느꼈다. 그게 바로 ‘말무리반도’였다. 말무리가 푸른 바다로 달려 나가는 형상! 그곳에서 돌아와 일 년 반이 지난 뒤에 나는 이 소설을 썼고, 그것으로 슬럼프에서 완전하게 벗어날 수 있었다. 지금도 봄이 되면 나는 어김없이 말무리반도를 보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