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후문 쪽에 자연스럽게 형성된 수목의 터널입니다.
차를 사용하지 않고 외출을 할 때는
짧지만 심도를 느끼게 하는 저 터널을 빠져나가 대중교통을 이용합니다.
저 여름의 터널을 오가는 요즘,
인생에 대한 생각이 한없이 깊어지는 걸 느낍니다.
어떤 선택의 문제처럼 여겨지던 것들도
이제는 확연하게 결정론적인 쪽으로 기울어지는 걸 자각합니다.
내가 한다고 믿는 일, 내가 할 수 있다고 믿는 일
그 모든 것들이 저 짧은 터널을 빠져나가는 동안 증류되어
들어갈 때의 막연함이 빠져나가고 나면
신선한 무위로 재생되는 기이한 신비를 느끼곤 합니다.
그리하여 남겨진 것은 오직 기다림뿐,
기다림이 필요할 때는 오직 기다림만이 진실의 대들보가 된다는 믿음으로
마음의 터널이 소멸되기를 기다리는 즈음입니다.